오바마, 차세대에너지 투자 케네디 달프로젝트에 비유… 오늘 아폴로우주인 3명 초청
1969년 7월 20일 오후 8시 17분 43초(국제표준시간). 미국 우주선 아폴로 11호의 달착륙선 이글호가 달 표면에 내려앉았다. 지구촌 곳곳의 낭만 시인들로 하여금 “이제 더는 달나라의 계수나무와 토끼를 노래할 수 없게 됐다”며 술잔을 기울이게 만든 이 순간은 달에 첫발을 디딘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78)의 말처럼 “인류의 위대한 도약(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이었다. 40주년을 목전에 둔 19일 미국 사회가 특별히 기린 사람은 바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사진)이었다.
“케네디의 프런티어 정신이 인간을 달에 보냈듯이 우리도 먼 미래를 내다본 투자를 해야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대선 출마 초기부터 케네디 전 대통령의 프런티어 정신을 ‘오바마 시대의 사표(師表)’처럼 강조해 왔다. “차세대 에너지 개발에 집중 투자해 화석연료의 노예로부터 벗어나겠다”는 자신의 구상을 케네디의 달 착륙 프로젝트에 비유해 온 것이다.
이처럼 달 착륙 40주년을 맞아 미국 사회가 특히 주목하며 되돌아보는 것은 자신의 임기 내에 이뤄질 수 없는 목표를 설정하고 사회의 에너지를 집중시킨 젊은 대통령의 비전이다. 달 착륙 8년 전인 1961년 5월 25일 케네디 대통령은 상하원 특별연설을 통해 “10년 이내 달에 미국인을 보내 안전하게 귀환시키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 과학자들과 숱한 토의를 거쳐 나온 결정이었다. 당시 기술 수준으로 달 탐사는 매우 험난한 도전으로 여겨졌다. 소요될 돈과 인력도 현대사에서 파나마운하 건설 프로젝트 정도를 제외하면 비견할 만한 게 없는 방대한 사업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미래를 위해선 우주개발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강했다. 1957년 소련이 먼저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올리고 1961년 4월 유인 우주비행에 성공한 데 크게 자극받은 것이기도 했지만 미래를 향한 전략적 투자의 개념도 강했다. 케네디 대통령의 결정으로 NASA의 조직과 인력이 개편되고 미 과학계는 달 착륙 도전 시스템을 구축해 우주산업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선두에 올라섰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런 케네디 전 대통령의 프런티어 정신을 되살리려는 시도 중 하나로 달 착륙 40주년이 되는 바로 이날 아폴로 11호에 탑승했던 우주인 3명을 백악관으로 초청했다. 3인의 우주인은 착륙선을 타고 달에 첫발을 디뎠던 닐 암스트롱과 모선(母船)을 조종했던 마이클 콜린스(78), 암스트롱에 이어 두 번째로 달에 내려선 에드윈 버즈 올드린(79)이다.
이 밖에도 달 착륙 40주년 축하 행사는 플로리다의 케이프커내버럴의 케네디 우주센터에서 텍사스 휴스턴의 존슨 우주센터, 그리고 워싱턴의 우주 박물관까지 이어진다. 일련의 행사 중 아폴로 11호 우주인 3인이 모두 참석하는 것은 백악관 행사 말고는 워싱턴 스미스소니언 협회가 주최하는 강연이 유일하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