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서비스는 ‘오모이야리’로 통한다

  • 입력 2009년 5월 30일 02시 58분


전국에 220개의 점포가 있는 회전초밥 체인 ‘구라’에서 한 고객이 접시를 반환구에 넣고 있다(왼쪽). 이 업체는 초밥을 먹을 때 점점 접시가 쌓여 고객이 불편하다는 점에 착안해 먹은 뒤 바로 반환구에 넣을 수 있도록 했다. 이 접시에 붙은 바코드를 기계가 자동으로 읽어 먹은 접시 수를 계산한다. 혼자 밥 먹을 때, 쑥스러움 없이 음식 맛을 음미할 수 있도록 라면체인 ‘이치란’은 독서실처럼 칸막이를 설치했다(오른쪽). 출처 일본생산성협회 ‘이치란’ 홈페이지
전국에 220개의 점포가 있는 회전초밥 체인 ‘구라’에서 한 고객이 접시를 반환구에 넣고 있다(왼쪽). 이 업체는 초밥을 먹을 때 점점 접시가 쌓여 고객이 불편하다는 점에 착안해 먹은 뒤 바로 반환구에 넣을 수 있도록 했다. 이 접시에 붙은 바코드를 기계가 자동으로 읽어 먹은 접시 수를 계산한다. 혼자 밥 먹을 때, 쑥스러움 없이 음식 맛을 음미할 수 있도록 라면체인 ‘이치란’은 독서실처럼 칸막이를 설치했다(오른쪽). 출처 일본생산성협회 ‘이치란’ 홈페이지
초밥접시마다 전자칩… “오래된 음식 자동퇴출”

나홀로 손님엔 칸막이 좌석… 겨울옷 보관대행도

2003년 가을, 세탁소에 들어선 아주머니 한 명이 가게 주인에게 지나가듯 투덜댔다. “집도 너무 좁은데, 겨울 외투가 어찌나 부피만 많이 차지하는지…. 누가 좀 가져갔다가 철 돌아오면 되받았으면 좋겠네.” 일본에서 보관료 없이 세탁물을 장기간 맡아주는 ‘e클로짓(e-closet)’ 서비스는 이 고객의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 고객의 불편함을 읽어라

올해로 창업 50주년을 맞은 세탁전문업체인 ‘기쿠야(喜久屋)’는 집안 수납공간 부족에 시달리는 고객들을 위해 전국 각지의 대형 창고를 개방했다. 인터넷으로 신청하면 기쿠야가 직접 방문해 세탁물을 걷어간다. 드라이클리닝을 마친 세탁물은 장기간 창고에 보관되는데, 좀먹거나 색이 변하지 않도록 온도 20도 이하, 습도 40∼60% 유지를 비롯해 일광 차단과 방충까지 전문적으로 관리해준다.

옷 보관 서비스는 세탁공장 가동률을 높여 수익으로 연결시켜 주었다. 기쿠야 측은 “예전에는 1∼3월, 7∼8월에 일감이 적었는데, 옷 보관 서비스를 시작하자 1년 내내 100% 가동률을 기록한다”고 밝혔다. 이 업체는 또 퇴근시간이 늦은 맞벌이부부를 겨냥해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도 세탁물을 수거·배달하는 ‘문라이트(moonlight) 서비스’를 한다.

이 기쿠야의 사례는 일본 서비스 경쟁력의 한 단면이다. 다른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아주 작은 것이라도 읽어내 그것을 제공하는 것이다. 최근 일본 생산성협회가 공개한 ‘하이 서비스 일본 300선’에서 최고로 뽑힌 서비스업체들의 비결은 바로 이 ‘오모이야리(思いやり·남의 입장을 헤아림)’, 즉 ‘배려’다.

회전초밥 체인업체 ‘구라(くら)’는 1990년대 후반부터 업계 최초로 접시 뒷면에 전자 칩이 들어 있는 카드를 붙여 주방장이 만든 지 일정 시간이 되는 초밥은 저절로 회전대 대열에서 빠지게 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주방장이 금방 만든 초밥을 먹고 싶다’는 고객 마음을 읽은 것. 이 회사는 또 착색료나 인공감미료를 첨가하지 않아 안전하다는 ‘4무(無) 첨가’ 마케팅을 하면서 성공을 거뒀다. 이런 노력으로 2004년에는 증권거래소에 상장됐다.

디지털사진 인화업체 ‘아스카넷’은 사람들이 디지털카메라로 사진만 찍고 인화는 귀찮아서 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해 저렴한 가격으로 거의 작품집에 가까운 고해상도 앨범을 만들어 줘 인기를 끌고 있다.

○ 남의 시선이 두려울 땐 ‘무인 시스템’

라면 체인점 ‘이치란(一蘭)’ 좌석은 모두 독서실처럼 칸막이가 쳐져 있다. 밥을 먹고 싶어도 4인 좌석이 기본인 한국과는 달리 일본은 바(bar) 형태의 좌석을 기본으로 하는데, 이 라면집은 아예 옆자리를 막아둔 것. 서로 얼굴을 볼 필요도 없이 고객은 식권판매기에 돈을 넣고, 주문표를 뽑은 뒤 음식을 먹을 수 있어 20대 여성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혼자 밥을 먹을 때 라면 맛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채 남의 눈치 보느라 서둘러서 먹는 사람들의 애로에 주목한 아이디어였다.

남의 시선이 신경 쓰이는 사람들의 심리를 가장 민감하게 읽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러브호텔 관계자들이다. 매년 7월 일본에서 열리는 ‘레저 호텔 페어’는 ‘어떻게 하면 마음 편하게 고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까’를 연구하는 아이디어의 총집합소다.

접수부터 계산, 비누나 칫솔 사기 등 서비스 일체를 사람을 대면하지 않고도 받을 수 있는 ‘무인 시스템’부터 지금은 거의 모든 숙박업소에 일반화된 작은 병에 샴푸와 린스 등을 담아 비치해 두는 것 모두 일본 러브호텔에서 나온 아이템이다. 24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일본 내 최고급 호텔인 ‘웨스틴 저팬’은 최악에 빠진 점유율을 회복하기 위해 샴페인과 꽃을 제공하는 러브호텔의 ‘로맨스 패키지’ 상품을 따라하기로 했다. 부모님과 사는 좁은 집에서 벗어나 로맨틱한 공간을 체험하고 싶은 고객들의 마음을 러브호텔이 읽고 성공을 거두자 고급 호텔까지 모방하기에 이른 것이다.

와세다대 비교사회학 프로젝트팀의 민숙 연구원은 “일본인들은 오모이야리와 기쿠바리(氣配り·실수가 없도록 이리저리 마음을 씀) 자세를 중시하는데, 이런 배려의 일상화가 상대방이 불편하게 느끼는 것을 항상 연구하게 만든다”며 “고객의 불편함을 해결하려는 태도가 기발한 서비스 개발로 이어진다”고 분석했다.

노지현 기자 isityo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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