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멈추고, 주민들은 떠나고… 美 ‘車산업 심장’ 마비 상황

  • 입력 2009년 5월 12일 03시 03분


문 닫은 공장 크라이슬러 본사가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문을 닫은 크라이슬러 워런 트럭 공장. 픽업 트럭 ‘닷지 램’과 ‘닷지 다코타’를 생산하는 이 공장에는 한때 2700여 명의 근로자가 3교대로 공장을 24시간 돌렸다. 그러나 공장 문을 닫기 직전에 700여 명이 1교대로 생산할 정도로 판매가 급감했다. 디트로이트=신치영 특파원
문 닫은 공장 크라이슬러 본사가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문을 닫은 크라이슬러 워런 트럭 공장. 픽업 트럭 ‘닷지 램’과 ‘닷지 다코타’를 생산하는 이 공장에는 한때 2700여 명의 근로자가 3교대로 공장을 24시간 돌렸다. 그러나 공장 문을 닫기 직전에 700여 명이 1교대로 생산할 정도로 판매가 급감했다. 디트로이트=신치영 특파원
“2대 걸쳐 3명이 직장 잃어” 크라이슬러 공장에 23년간 다니다 10년 전 퇴직해 연금 생활을 하고 있는 에이머스 오글레스비 씨. 그는 “자동차부품 공장에 다니던 두 자녀도 최근 일자리를 잃었지만 미국 자동차회사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뒤로 전미자동차노조(UAW)의 본부 건물이 보인다.
“2대 걸쳐 3명이 직장 잃어” 크라이슬러 공장에 23년간 다니다 10년 전 퇴직해 연금 생활을 하고 있는 에이머스 오글레스비 씨. 그는 “자동차부품 공장에 다니던 두 자녀도 최근 일자리를 잃었지만 미국 자동차회사에 대한 희망을 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뒤로 전미자동차노조(UAW)의 본부 건물이 보인다.
■ 크라이슬러 파산신청후 디트로이트 가보니

크라이슬러 22곳 가동중단,인근 상점 매출 70% ‘뚝’

GM 폰티악 연구센터, 영화제작소 용지로 팔려

실업률 23%로 미국내 최고, 언제쯤이나 다시 일할지…

“공장도 멈추고, 사람들도 하나둘 떠나고 있습니다. 생활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만 미국 자동차산업은 반드시 회생할 것입니다. 디트로이트도 다시 활기를 찾겠지요.”

5일(현지 시간) 미국 자동차산업의 본산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따뜻한 봄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지만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잔뜩 움츠려 있었다. 제너럴모터스(GM) 크라이슬러 포드 등 미 자동차 3사 본사와 각종 자동차 생산 공장이 들어선 디트로이트는 미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운명이 기울어지면서 짙은 불황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 문닫힌 크라이슬러 공장과 텅 빈 거리

디트로이트 도심에서 북쪽으로 20여 분 거리에 위치한 크라이슬러 워런 트럭공장. 미국인들 사이에 인기 있는 픽업트럭 브랜드인 닷지 램, 닷지 다코타 등을 생산하는 공장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근로자들은 한 명도 볼 수 없었고 공장 건너편 수백 대를 수용할 수 있는 임직원 전용 주차장도 텅 비어 있었다. 수개월 전만 해도 2700명 직원이 3교대로 하루 24시간 일하던 공장이다. 공장 입구에 세워놓은 램, 다코타 차량과 크라이슬러 공장 간판을 제외하면 자동차 조립공장인지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공장 입구에는 폐쇄 안내문조차 걸려 있지 않았다. 혼자 공장을 지키고 있는 경비원은 “지난달 30일 크라이슬러 본사가 파산보호를 신청하기 직전인 27일부터 가동이 중단됐다”며 “두 달 후 생산을 재개한다고 하는데 정확한 것은 모르겠다”고 말했다. 크라이슬러는 파산보호를 신청하면서 22개 공장의 가동 중단에 들어갔다.

공장 문이 닫혀서인지 공장 앞 대로에는 행인도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공장 건너편에 문을 연 편의점에 들어서자 직원 3명이 가게를 지키고 있을 뿐 손님은 한 명도 없었다. 카운터에 서 있던 로드 씨는 “이곳에서 일한 지 3년 됐는데 이렇게 장사가 안되기는 처음”이라며 “공장이 문을 닫기 전에 비해 매출이 70% 정도 줄었다”고 전했다. 한쪽 편에서 피자와 치킨 코너를 지키고 있던 샌디 양은 “언제 공장 문이 다시 열릴지 알 수 없지 않느냐”며 “나도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고 털어놨다.

○ 영화제작소로 바뀌는 폰티악 공장

크라이슬러 워런 트럭공장에서 30여 분 떨어진 GM 폰티악 공장. 축구장 대여섯 개 규모의 커다란 이 공장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동차 야적장 한쪽에 수십 대의 폰티악 자동차가 배송을 기다리며 서 있을 뿐 주변 도로는 한산했고 공장 주변에는 인적도 드물었다. 간간이 공장을 오가는 대형 트럭 몇 대만이 공장이 가동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한때 미국인들이 좋아하던 폰티악은 인기가 시들해져 판매가 급감했고 생산량은 크게 줄었다. GM은 결국 지난달 27일 자구책의 일환으로 폰티악 브랜드를 포기하겠다고 밝혔다. 내년 말까지 모든 폰티악 공장 문을 닫기로 한 것이다.

근처에 있는 폰티악 연구개발센터는 이미 텅 비어 있었다. 미시간 주 정부가 자동차산업을 대체할 수 있는 산업으로 영화산업을 키우기로 하고 이 용지에 영화제작소를 유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폰티악 연구개발센터는 할리우드 영화사에 팔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처럼 폰티악 공장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공장이 위치한 폰티악 시는 ‘유령도시’로 변해가고 있었다. 공장 폐쇄와 감원 등으로 공장 근로자들이 도시를 떠나가면서 경제가 마비되기 시작했다. 도심은 한적했고 텅 빈 상가들이 즐비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건물들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이 지역 한인 교민신문 주간 미시간을 발행하는 김택용 미시간 주지사 자문위원은 “자동차 공장들이 폐쇄되면서 근로자들과 함께 생활이 어려워진 주민들이 살길을 찾아 떠나 도시가 유령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미 자동차산업이 몰락하면서 디트로이트와 인근 위성도시에는 실직자가 넘쳐나고 있다. 디트로이트의 실업률은 3월 말 현재 23.2%로 미국 내 최고 수준이다. 3월 미국 전체 실업률은 8.5%였다.

○ 희망 버리지 못하는 디트로이트

전문가들은 자생력을 잃은 미국 자동차산업이 정부 도움으로 어떻게든 살아남겠지만 화려했던 옛 명성을 찾기는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생산량과 직원을 줄여 생존하는 데 급급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디트로이트 시민들도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회생에 대한 희망을 아직 버리지 못하고 있다. 전미자동차노조(UAW) 본부 앞에서 만난 에이머스 오글레스비 씨(61)는 “크라이슬러 워런 공장을 23년간 다니다가 10년 전에 퇴직해 매월 780달러의 연금으로 살아가고 있다”며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고 반드시 ‘컴백’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부품회사에 다니던 두 자녀도 최근 해고를 당했지만 곧 다른 일자리를 찾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크라이슬러의 엔진 조립공장에서 12년간 일하다 작년 11월 해고된 존 롬니 씨는 “지금으로서는 가능한 일인지 모르겠지만 기회가 오면 회사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

디트로이트=신치영 특파원 higgle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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