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컨센서스’ 대책 마련 목소리

  • 입력 2009년 4월 14일 03시 01분


재정부 분석 보고서

“개도국 체제 존중 강조

亞-중남미에 영향력 확대

한국 교역-자원외교 비상”

기획재정부는 13일 ‘베이징 컨센서스의 개념과 영향 분석’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동안 경제위기 극복 대책 등 주로 국내 경제에 집중했던 재정부가 국제 경제 이슈와 관련된 자료를 낸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재정부 당국자는 “베이징 컨센서스가 확산되면 한국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이 있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 컨센서스는 중국식 경제발전 모델 또는 경제 헤게모니 전략을 일컫는 용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금융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중국의 강력한 역할이 부각되면서 베이징 컨센서스에 대한 관심도 커지고 있다. 특히 반미(反美) 성향의 국가들은 금융위기를 촉발한 미국식 경제 모델 대신 중국 모델에 동조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중국이 올해 초부터 미주개발은행(IDB) 등 국제기구에 적극 참여하면서 개발도상국에 베이징 컨센서스를 확산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개발도상국의 경제 교과서였던 ‘한국식 경제모델’도 영향력 축소를 감수해야 할 것으로 재정부는 우려하고 있다.

○ ‘슈퍼 파워’로 부상하는 중국

넓은 땅과 13억7000만 명의 인구, 높은 경제성장률로 중국은 이미 예정된 세계 경제의 리더였다. 이달 초 열린 제2차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이런 모습이 확연히 드러났다. 중국은 미국 주도의 국제통화기금(IMF)을 개혁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고 보호무역주의 배격, 최빈국(最貧國) 지원 등을 제안해 개발도상국들의 대변자 역할을 하며 ‘세력’을 과시했다.

이런 영향력은 중국 정부가 여러 해에 걸쳐 지속적으로 추진해온 베이징 컨센서스에 뿌리를 두고 있다. △정부 주도의 점진적·단계적 경제개혁 △도시와 농촌 등에서 조화롭고 균형 잡힌 발전전략 △타국의 주권 존중과 내정 불간섭 등의 내용을 담은 베이징 컨센서스는 아시아 및 중남미 국가들 사이에서 폭넓은 동의를 받고 있다.

중국이 위안화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도 베이징 컨센서스의 확산과 관련이 깊다. 재정부는 이날 보고서에서 “중국이 금융위기가 시작된 지난해 말부터 현재까지 6개국과 6500억 위안 규모의 통화스와프를 맺는 등 위안화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지난달 말 아르헨티나와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면서 중국과의 무역대금 결제에 달러화와 함께 위안화 사용을 가능하게 해 위안화를 국제통화로 격상시키는 작업에 시동을 걸었다는 분석이다. 아프리카와 중남미 저개발 국가를 대상으로 대규모 대외 원조를 하는 것도 해외에서 자원을 확보하는 목적과 함께 중국식 경제발전 모델을 이식(移植)해 국제사회에서 중국의 위상을 높이려는 의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미국식 자본주의의 위기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가 G20 정상회의가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낡은 워싱턴 컨센서스의 시대가 끝났다”고 공언하면서 베이징 컨센서스는 더욱 주목받았다. 워싱턴 컨센서스란 미국식 시장경제 확산전략을 일컫는 말이다.

미국 중심의 세계 경제 질서는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으면서 돌이키기 어려운 충격을 받았다. 특히 이번 위기가 금융부문의 지나친 규제완화 등 워싱턴 컨센서스의 핵심적인 부분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미국이 기존의 권위를 회복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워싱턴 컨센서스의 몰락과 베이징 컨센서스의 부상은 한국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동아시아 금융 허브’를 지향하는 한국으로서는 베이징 컨센서스가 강조하는 규제 강화에 무작정 동참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세계적인 흐름을 완전히 무시하기도 힘들다. 또 중국의 영향력 확대로 중남미와 아시아 등 수출시장에서 중국과의 경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대외원조를 통해 각종 자원개발 사업을 선점하면 한국의 ‘자원외교’ 전략도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곽수종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이미 워싱턴 컨센서스는 무너졌고 향후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미국 중국의 ‘양강 구도’가 형성될 것으로 보는 전문가가 많다”며 “한국은 정치적으로 미국을, 경제적으로 중국을 이용해 실리를 취하는 ‘줄타기’ 전략을 검토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지적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차지완 기자 cha@donga.com

:베이징 컨센서스:

각국이 독자적 경제 성장을 추구해야 하며, 세계 경제 체제에는 각국 사정에 따라 점진적으로 편입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는 중국식 발전 모델이나 경제관련 중국의 헤게모니 전략. 2004년 5월 칭화대 조슈아 쿠퍼 라모 교수가 처음 사용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세계화, 규제완화를 강조하는 미국식 ‘워싱턴 컨센서스’의 문제점이 부각되면서 아시아국가 등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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