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오바마 새 역사를 쓰다

  • 입력 2008년 11월 6일 02시 58분


오바마 시대가 열렸다. 미국은 물론이고 세계사적 의미가 자못 크다. 미국 건국 232년 만의 첫 흑인 대통령이거니와 이 젊은 지도자가 약속한 ‘변화와 희망’에 세계가 목말라 있기 때문이다. 그는 과연 세계를 더 평화롭고 풍요로운 곳으로 바꿔낼 수 있을 것인가.

버락 오바마 미국 44대 대통령 당선인은 스스로가 국경과 인종의 벽이 사라져가는 지구촌의 축약판이다. 케냐인 아버지와 미국인인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고, 어려서는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인도네시아에서 살기도 했다. 그의 이름에는 지금도 ‘후세인’이란 중간이름이 들어있다. 그런 그가 미국의 새 지도자가 된 것은 안으로는 인종과 이념 갈등을 치유하고 밖으로는 좀 더 민주적이고 다원화된 국제사회를 창출해 달라는 시대적 요구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도 세계도 지쳐 있다. 1991년 소련(蘇聯)제국의 붕괴와 함께 40여 년간의 냉전체제는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귀결됐지만 그 후 십수 년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못한 탓이 크다. 특히 조지 W 부시 정권 8년간 피로가 누적됐다. 9·11테러와 이에 대한 미국의 일방주의적 대응은 그 정점(頂點)이다. 미국은 국제사회와의 충분한 소통·공감 없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에 뛰어들었고 그 후유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발(發) 글로벌 금융위기도 방만한 미국식 자본주의의 불행한 중간 결산이다.

미국과 세계의 ‘피로’ 씻어낼 뉴리더십 기대

오바마는 이런 부채(負債)를 청산하고 미국을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세계는 미국의 일방주의에 염증을 내면서도 ‘약한 미국’이 초래할 혼란과 비효율을 원하지 않는다. 일각에선 미국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등으로 구성될 다극체제를 상정하고 이를 대안으로 거론하나 가까운 미래에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국이 새로운 리더십을 보여주는 게 현실적으로 최선의 대안이다. 어떤 리더십인가. 미국외교협회(CFR) 리처드 하스 회장의 지적처럼 ‘미국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이제 거의 없다’는 자각과 겸손의 리더십이어야 한다. 이란 핵 문제부터 국제금융의 새 틀 짜기까지 국제사회와 대화하고 협력하라는 얘기다. 오바마도 당선 소감에서 세계를 향해 “우리는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면서 “미국의 새 리더십의 새 아침이 밝았다”고 선언했다. 15일 워싱턴에서 글로벌 금융위기를 논의할 G20 정상회의가 새로운 리더십의 첫 시험장이 되기를 기대한다.

오바마 시대는 한국에도 도전이자 기회다. 현안인 핵 문제에 대해 오바마는 북한과 직접 대화할 의사를 밝혔다. 그 선의(善意)에도 불구하고 북과의 조건 없는 대화가 6자회담 프로세스와 충돌할 수도 있는 게 사실이다. 북이 먼저 미국에 대화를 제의할 공산도 크다. 그러나 북-미 간의 어떤 대화도 북핵 폐기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이 원칙만 지켜진다면 미국의 대화 의지를 ‘당근’으로 삼아서 핵 폐기와 북의 개혁 개방을 유도하는 데 유리한 국면을 조성할 수도 있다.

한국, 거대한 변화에 능동적 전략적 대응해야

오바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재협상을 요구할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미국 민주당은 의회를 장악한 1993년과 2007년에도 각각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과 페루 및 컬럼비아와의 FTA를 재협상한 전례가 있다. 우리로선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최근 “우리라도 먼저 비준하자”고 나선 것도 그래서다. 초당적인 대처가 긴요하다. 민주당 정부는 전통적으로 ‘공정무역’이라는 이름하에 보호무역 성향을 보여 왔다는 점도 마음에 걸린다. 미국의 자동차시장 개방 압력이 강해질 수 있다.

‘오바마의 미국’이 큰 흐름에서 고립주의로 갈 것이라는 관측도 신경이 쓰인다. 새 정부는 단기적으로 이라크전쟁에서 한 발 빼면서 의료보험 개혁과 경제위기 해소 등 국내 문제에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을 포함한 해외주둔 미군의 감축 문제가 거론될 수 있다. 주한미군 일부가 아프가니스탄으로 갈지도 모른다. 2012년의 전시작전통제권 전환(단독행사)을 앞둔 우리로서는 예의 주시하고 기민하게 대응해야 할 부분이다.

세계 슈퍼파워이자 우리의 유일한 동맹국인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되면 우리와 그 주변에도 크고 작은 변화가 불가피해진다. 문제는 그러한 변화를 슬기롭게 타고 넘어갈 수 있느냐에 있다. 미국에 민주당 정부가 들어선다고 북-미가 곧 수교라도 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어선 곤란하다. 그렇다고 상대의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시기와 방법을 놓쳐서도 안 된다. 오바마 시대가 가져올 미국 및 세계의 변화에 차분하게 대처하면서 한미관계를 국익(國益) 극대화의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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