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잃어버린 10년’ 초래한 자산 디플레와 비교하면…

  • 입력 2008년 10월 29일 03시 02분


닮았다… 은행 담보대출 급증-주가 급락후 부동산 하락

다르다… 설비-고용 과잉 없고 상업용 부동산 거품 미미

1989년 12월 29일 일본의 닛케이평균주가는 38,915엔으로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0개월 후인 1990년 10월 1일 닛케이주가는 절반 수준인 20,000엔으로 떨어졌다. ‘잃어버린 10년’의 시작이었다.

1980년대 최고의 호황을 누리던 일본은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선진 5개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가 모여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기 위해 엔화 대비 달러화 가치를 떨어뜨리기로 한 것) 이후 내수 진작을 위해 금리를 내렸다.

1985년 5%였던 기준금리는 1987년 2.5%로 낮아졌고 돈이 풀리자 자산 가격이 급등했다. 닛케이주가는 1985년 이후 4년 동안 약 3배 올랐고 부동산 가격은 5년 동안 약 4배 올랐다. ‘도쿄 왕궁을 팔면 미국 캘리포니아 주 전체를 살 수 있다’는 말이 나온 것도 이때.

규제가 완화되면서 대출 경쟁에 뛰어든 은행들은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대기업 대신 중소기업, 개인을 대상으로 대출을 늘렸다. 1985년 은행 대출 중 중소기업과 가계 대출의 비중은 52.9%였지만 1990년 이 비율은 72.1%로 높아졌다. 부동산 금융만을 전담하는 회사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유동성 폭발에 놀란 일본 정부는 다시 금리를 높이고 부동산 대출 규제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금리가 급격히 오르자 버블 붕괴가 시작됐다. 한때 40,000엔에 육박하던 닛케이주가는 2003년 8,000엔까지 떨어졌다.

주가 폭락 1년 반 뒤부터 부동산 시장 거품이 꺼졌다. 2006년의 평균 지가는 1991년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기업 도산이 이어졌고 은행들은 파산 위기에 몰렸다. 일본 정부는 1992∼2002년 180개 금융회사 및 신용조합에 약 25조 엔의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했다.

정부는 기준금리를 0.1%로 내리고 12회의 종합경제대책을 발표하며 경기부양을 위해 수조∼수십조 엔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1992∼2002년 연평균 경제성장률은 0.9%에 그칠 정도로 침체가 오래갔다.

언뜻 보기에도 일본의 경험은 한국 경제가 막 들어서려고 하는 길과 아주 흡사하다. 유동성이 풍부한 틈을 타 주식, 부동산 가격이 급등했고 은행들이 부동산을 담보로 가계, 중소기업 대출을 크게 늘렸으며 주가 급락 후 부동산 가격 하락이 시작됐다.

하지만 한국이 일본식의 장기 침체에 이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적지 않다. 한국금융연구원 박종규 선임연구위원은 “일본과 달리 한국은 설비 및 고용 과잉이 없고 상업용 부동산 버블이 심각하지 않아 장기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은 작다”고 말했다.

장원재 기자 peacecha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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