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병원에 당장 급한 건 첨단장비가 아닌 진단지식”

  • 입력 2008년 7월 25일 02시 59분


한국 병리학자 7인, 현지 의사들에게 병리학 교육

“몽골의 의료체계는 분명 척박한 수준이다. 그러나 당장 필요한 건 첨단 의료장비가 아니다. 환자를 진단하고 치료할 기초 진단지식, 즉 병리학이다.”

몽골 동부의 국립병원 ‘도르노트 메디컬센터’를 맡고 있는 간바트 원장의 말이다.

대한병리학회 소속 7인의 병리학자가 ‘도르노트 프로젝트 팀’을 결성해 12일부터 9일간 몽골을 찾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난해 9월 몽골 전역의 병리학 의사를 대상으로 몽골 국립의과대에서 병리학 교육을 진행한 이후 두 번째 방문이다.

현재 몽골의 여성 암 발병률 1위는 자궁경부암. 자궁 입구에 발생하는 암으로, 우리나라도 과거 발병률이 1위를 기록했지만 현재는 조기검진 기술 덕분에 7위까지 떨어졌다.

조기검진은 현대 과학기술 수준으로 그다지 어렵지 않다. 검진용 브러시로 의심이 가는 병변을 문질러 유리 슬라이드에 바른다. 이를 시약으로 염색하고, 현미경으로 살피면 된다.

하지만 이런 염색법도 기초적인 병리학 지식 없인 불가능하다. 세포 염색도, 암세포를 구분하는 것도 할 수 없었던 몽골 의료진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 방문에서 염색·진단 교육을 맡은 노미숙 동아대 교수는 “표본 만드는 기술이 뒤떨어져 판독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즉시 조치에 들어갔다. 먼저 현지 의사들의 표본제조 과정을 살폈다. 세포염색 과정을 모두 확인하고, 시간과 순서를 엄중히 지키도록 재교육했다.

간단한 과정이지만 성과는 적지 않았다. 현지 의료진이 한층 선명해진 표본을 만들어 암 직전 단계까지 발전한 세포인 ‘하이 실(High SIL)’ 2건을 발견했다. 2명의 환자는 암이 발병하고 나서야 다시 병원을 찾았을지 모를 일이다. 하승연 가천의대 교수는 “이번 교육을 통해 현지 병원의 자궁경부암 조기검진율이 30% 이상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아직 숙제는 많다. 도르노트 메디컬센터에는 세포 채취를 위해 전용 브러시를 사용하지 않고 면봉을 쓴다. 이 경우 검진율이 50%까지 떨어진다. 신형 브러시 300여 개를 전달했지만 곧 소진될 것은 자명한 일. 염색시약 등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해 깨끗한 표본을 만들지 못하는 것도 문제였다. 고급 기자재보다 소모성 의료도구 확충이 절실한 것이 몽골의 현실이다.

이번 프로젝트 팀원 가운데 이상한 경북대 교수는 과학수사 전문가다. 육군과학수사대 일원으로 활동했으며 1998년 김훈 중위 자살사건을 해결한 이력의 소유자. 평소 과학수사는 병리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지론 때문에 기꺼이 자발적으로 참가했다.

도르노트 메디컬센터의 에크헤훌운 씨는 “몽골의 법의학 전문의는 30여 명에 불과하다”며 “이 교수의 강연은 법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대다수 의사가 부검활동을 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이라고 했다.

김한겸(고려대 교수) 대한병리학회 이사장은 “몽골 의사들은 한번 배운 것은 원칙을 어기지 않고 철저히 시행하는 장점이 있다”며 “기회가 닿는 대로 국내 병리학 지식을 더 많이 전파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도르노트=전승민 동아사이언스 기자 enhance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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