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프라임 불똥’ 美기업에 옮아붙었다

  • 입력 2008년 7월 5일 03시 03분


소비심리 꽁꽁… GM-스타벅스 등 큰 타격

‘빚 제때 못 갚는 회사’ 작년 4배 넘을 수도

美 경영난 확산땐 對美수출 위축 불보듯

환락의 도시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는 요즘 대형 호텔과 카지노를 운영하던 트로피카나 엔터테인먼트사(社)의 파산으로 뒤숭숭하다.

미국 전역에서 10여 개의 카지노를 운영하며 1만여 명의 종업원을 거느리던 이 회사는 최근 오락산업의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경영난을 겪어 왔다.

현지 언론들은 이 회사의 도산을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실물경제에 본격적으로 옮아가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으로 해석하고 있다.

경기침체로 지갑이 얇아진 미국 소비자들은 도박, 사치품 관련 소비 등을 제일 먼저 줄이기 시작했고 이런 움직임이 게임산업에 치명타를 안긴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의 표현을 빌리자면 “지금 라스베이거스엔 빚더미에 오른 카지노들만이 즐비할 뿐”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가 미국 기업들의 수익성 악화와 경영위기로 번지는 것은 침체에 빠진 한국 경제의 회복에도 상당한 걸림돌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 미국 기업들 대출 부실 증가

2, 3년 전에도 GM 포드 크라이슬러 등 디트로이트의 ‘빅 3’ 자동차 기업에 대한 위기론이 제기됐다. 이들 회사는 인건비, 자재비 등 생산비용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 때문에 직원을 크게 줄이고 효율성을 높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아예 제품이 제대로 팔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의 차원이 달라졌다.

경기침체와 유가 급등으로 소비심리가 꽁꽁 얼어붙으면서 자동차 판매가 최근 10년간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것. 미국의 투자은행 메릴린치가 “GM의 파산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충격적인 보고서를 낸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다.

500여 개 점포를 운영해 온 가정용품 체인 ‘리넨스 엔 싱스’도 올해 5월 파산을 신청했다. 세계 최대의 커피 체인점인 스타벅스는 실적이 부진한 미국 내 매장 600곳을 폐쇄하고 1만여 명을 감원하기로 했다. 이처럼 유통체인이나 자동차, 여행, 명품산업 등 경기를 잘 타는 업종들이 소비 위축에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다.

빌려간 돈을 제때 못 갚은 회사도 급증하고 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에 따르면 S&P가 신용등급을 매기는 글로벌 기업 중 올해 들어 5월 말까지 채무불이행에 빠진 기업은 모두 28곳으로 지난해 전체 수치(22곳)를 이미 초과했다. 이 중 한 곳을 제외한 나머지 27개는 모두 미국 기업이었다.

이렇게 기업들의 재무 상황이 악화되면서 또 다른 위기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한국금융연구원은 지난달 낸 보고서에서 “미국 기업대출의 채무불이행률이 지난해의 4배 가까이 상승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만기가 돌아오는 대출의 규모도 급증하는 추세. 부실채권이 계속 쌓이다가 금융 혼란이 증폭되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뜻이다.

○ 한국 경제에도 암초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사태로 인한 미국 실물경제의 타격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부동산발 금융위기로 집값이 떨어지면서 미국인들의 자산 및 소득이 줄었고, 자연스레 소비가 위축돼 기업들의 판매에 악영향을 미쳤다. 실적이 나빠진 기업들은 신규 고용을 줄이거나 감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상은 바다 건너 한국 경제에도 큰 부담을 안겨줄 것으로 보인다.

미국 기업들이 한국에 대한 투자를 줄일 가능성이 있으며 대미 수출도 타격이 불가피하다. 한국의 전체 수출액 중 대미 수출의 비중은 지난해 말 현재 12.3%. 유엔은 올해 3월 낸 보고서에서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을 싱가포르 대만과 함께 미국의 경기침체로 가장 타격을 많이 받을 나라로 꼽았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구미팀 이준규 팀장은 “중동과 신흥 개발도상국에 대한 수출의 비중을 늘려 충격을 흡수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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