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를 살려주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5월 10일 02시 58분



밧줄로 팔 묶고 버텼지만…미얀마의 한 언론인이 9일 본보에 보내온 사진이다.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남긴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이들은 갑자기 불어난 물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서로의 팔을 밧줄로 묶기까지 했지만 끝내 재앙을 피하지 못했다. 본보는 그동안 독자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사진을 싣지 않아 왔으나 이번 경우는 군사정권의 통제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있는 참혹한 실태를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일부 시신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해 게재하기로 했다.
밧줄로 팔 묶고 버텼지만…
미얀마의 한 언론인이 9일 본보에 보내온 사진이다.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남긴 참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아이들은 갑자기 불어난 물에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서로의 팔을 밧줄로 묶기까지 했지만 끝내 재앙을 피하지 못했다. 본보는 그동안 독자에게 불쾌감을 줄 수 있는 사진을 싣지 않아 왔으나 이번 경우는 군사정권의 통제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있는 참혹한 실태를 제대로 알릴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일부 시신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해 게재하기로 했다.
사이클론에 찢기고 군부에 갇히고…현지언론인 본보에 참상전해
《“아직 숨쉬고 있다.” 미얀마의 언론인인 타우캰(가명)의 한마디에 기자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부인과 아들은 모두 무사하다고 했다. 그는 거대한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휩쓸고 간 조국의 참상을 군사정부의 감시망을 피해 9일 평소 친분이 있던 본보 기자에게 알려왔다. 사망 2만2997명, 실종 4만2119명, 부상 1403명. 미얀마 군사정부가 공식 발표한 수치만으로는 잘 그려지지 않던 피해 상황이 그가 보내온 글과 사진 속에 생생히 담겨 있었다. 친구와 놀다 갑자기 불어난 물에 변을 당했는지 서로 엉킨 채 익사해 물 위를 떠다니는 아이들 사진도 있었다. AP통신은 이번 사이클론으로 100만 명이 넘는 이재민이 발생했고, 고아도 수천 명에 이를 것이라고 9일 보도했다. 타우캰이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하며 피해지역 곳곳을 취재한 내용을 소개한다. 군정의 보복을 우려해 가명을 썼다. 》

물위에 시신 둥둥… 식량없어 수몰돼지 먹기도

대도시 양곤만 복구시작… 지방은 아직 생지옥

군사정권, 민심동요 우려 해외 구호손길 막아

미얀마는 지금 자연이 가져온 재앙과 파멸의 현장 그 자체다. 피해가 심각한 지역엔 아직도 수많은 시신이 물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다. 소 돼지 등 큰물에 휩쓸려 죽은 가축들도 여기저기서 밀려온 쓰레기 더미와 함께 방치된 채 썩어가고 있다.

이재민들은 천막도 구하지 못해 큰 비닐로 만든 임시 거처에 모여 비를 피하고 있다. 일부 주민은 먹을 것이 부족해 익사한 돼지를 건져 먹기도 한다.

반면에 양곤의 상황은 점차 나아지고 있다. 군부가 민심이 동요할 것을 우려해 외부에 노출된 곳부터 복구에 나섰기 때문이다.

비바람에 쓰러진 나무와 파괴된 가옥들이 아직 도시 곳곳에 즐비한 상태지만 양곤 주요 번화가에선 복구 작업이 진행 중이다. 학교를 비롯한 공공시설에 대한 수리도 사이클론이 지나간 뒤 곧바로 시작됐다.

9일에는 한때 중단된 전력이 다시 공급되기 시작했으며 전화도 개통됐다. 그러나 식수와 수돗물 공급은 여전히 원활하지 못한 상황이다.

특히 병원과 의약품 등 이재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시설과 물자는 턱없이 부족하다. 미얀마의 의료시설은 1990년대 이후 평소에도 늘 부족한 상태였다. 따라서 부상자가 급격히 늘고 있는 현재 상황이 얼마나 끔찍할지는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수도권은 2, 3개월 안으로 복구 작업에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군부가 손을 놓다시피 한 지방의 상황은 오히려 갈수록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피해가 가장 극심한 이라와디 삼각주 지역은 도로나 다리 등 기반시설이 훼손돼 접근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이들 지역은 헬리콥터나 고성능 보트를 동원해 고립된 주민부터 구조해야 한다.

미얀마인들은 한국 미국 등 외국 정부와 태국을 비롯한 주변 국가가 적극 나서주기를 바라고 있다. 유엔이 미얀마 군부의 허가와 상관없이 식료품 공중 투하를 고려하고 있다고 전해지면서 이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지방 주민들은 도움이 절실하면서도 군부에 대한 불신 때문에 군인과 자원봉사자들이 자주 오가는 것을 불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들이 복구 작업에 동원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감시하기 위해 왔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미얀마인들은 이번 재난을 계기로 군부가 물러나길 바라면서 외국 정부와 국제단체들이 강한 압력을 넣어주길 바란다. 기자가 피해지역 곳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독재자인 탄쉐 장군을 로마제국의 네로 황제에 비유하며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미얀마 군부도 이 같은 민심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태로 자신들의 권력 기반이 무너질 가능성에 대해 가장 우려하고 있다. 해외 원조를 적극적으로 수용하지 않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리=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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