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 교육혁명중]<2>‘토머스 제퍼슨 과학高’

  • 입력 2008년 1월 29일 02시 59분


고교생들이 만든 인공위성, 올해말 우주로 우주로

《미국 듀크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는 제이슨 에티어 씨는 요즘도 방학 때 틈만 나면 고교 시절의 동아리 방으로 달려간다. 그는 워싱턴 근교 버지니아 주 알렉산드리아의 토머스 제퍼슨 과학고 재학 시절 우주과학반에서 활동했다. 당시 에티어 씨와 친구들의 관심사는 “우리 힘으로 인공위성을 띄워 보자”는 것이었다. 이들을 위해 학교 측은 2006년 초 “창의력을 우주 끝까지 펼쳐 보라”며 인공위성 과목을 개설해 줬다.

에티어 씨는 과학 기술적 지식뿐만 아니라 실제로 인공위성을 만들어 본 경험자의 얘기도 듣고 싶었다. 그는 그해 여름방학 때 ‘오비탈 사이언스’라는 첨단기술 업체에 인턴으로 들어갔다. 인공위성 개발 경험이 있는 과학자와 기술자들을 알게 됐고 마침내는 경영진을 설득해 2006년 겨울 인공위성 프로젝트에 대한 기술적 재정적 지원을 약속받았다.》

“우리 힘으로 해보자” 학생들이 직접 돈-기술지원 받아내

“우주 끝까지 꿈 펼쳐라” 학교도 과목 개설해 적극 격려

美공립학교 랭킹 1위… 영재 조기 발굴해 실험-토론 수업

교사 142명중 15명이 박사… 학생 창의력 끊임없이 자극

첨단 전자장비를 장착한 가로, 세로, 높이 각각 10cm의 무게 1kg짜리 위성을 지상 200∼2000km의 궤도에 띄우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목표 시기는 2008년 말. 위성 이름은 ‘TJ(토머스 제퍼슨 고교의 이니셜)-SAT’라고 붙였다.

에티어 씨를 비롯한 프로젝트 시작 멤버들은 졸업했지만 동아리 후배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함께 작업하고 있다. 총비용 10만 달러와 기술에 대한 조언은 오비탈 사이언스와 학교 측이 지원하고 있다.

이 학교 에번 글레이저(36) 교장은 ‘TJ-SAT’ 프로젝트 출범 때부터 적극 격려해 왔다. 그는 지난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위성을 쏘아 올린다는 사실 자체보다 학생들이 스스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행에 옮기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많은 도전을 헤쳐 가는 훈련을 한다는 점이 더 소중하다”고 강조했다.

인공위성 프로젝트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글레이저 교장의 안내를 받으며 둘러본 각 교실의 수업 현장에선 독창적이고 세부적인 수많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10학년(한국의 고교 1년) 생물 수업을 하는 교실에 들어서자 15명의 학생이 각자 지난해 가을부터 준비해 온 프로젝트의 진행 사항을 발표하며 토론하고 있었다. ‘서식환경의 온도 변화가 선충의 단백질 구성에 미치는 영향’ 등 주제는 학생마다 각양각색이고 세부적이었다.

교사 존 폴리스 씨는 학생 1인당 백과사전 두께는 됨 직한 파일을 만들어 들고 다니며 조언을 해 줬다. 그는 “실험과 토론 위주의 수업을 통해 학생 스스로 창의성을 개발하며 도전정신을 마음껏 발현해 볼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학교는 버지니아 주 정부가 설립한 이른바 ‘마그넷 스쿨’. 실패한 공교육을 보완하기 위해 만든 특성화 고교로 ‘자석처럼 학생을 끌어들인다’는 뜻에서 붙인 명칭이다.

토머스 제퍼슨 과학고는 그중에서도 미국 내 톱클래스의 영재학교다. 지난해 말엔 주간 유에스 뉴스 앤드 월드리포트가 매긴 공립학교 랭킹 1위에 올랐다.

요즘 미국에선 ‘제2, 제3의 토머스 제퍼슨 과학고’를 만들겠다는 열풍이 불고 있다. 상당수 주와 카운티가 마그넷 스쿨을 운영 중이거나 개교를 준비하고 있다.

대부분의 주가 초등학교 2, 3학년 때부터 우수 학생을 뽑아 별도로 교육하는 ‘GT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존스홉킨스대의 CTY프로그램 등 명문대가 운영하는 영재교육센터들은 3주 프로그램에 3000달러 이상의 비용에다 까다로운 시험을 통과해야 하지만 경쟁률이 수십 대 1을 넘을 정도로 인기다.

이처럼 현재 미국의 교육개혁은 크게 두 갈래로 진행 중이다. 교육개혁법(No Child Left Behind)에 따라 뒤처지는 공립학교들을 독려해 수준을 높이는 동시에 나라의 장래를 짊어질 최고 수준의 인재들을 발굴해 창의성을 키우는 영재교육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영재교육의 활성화를 가능케 하는 핵심 요소로는 단연 교사들의 경쟁력 강화가 꼽힌다. 주 단위, 카운티 단위, 학교 단위로 셀 수 없이 다양한 인센티브 제도를 통해 교사들에게 자기계발과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토머스 제퍼슨 과학고의 경우 물리학과 교육학 박사인 글레이저 교장을 필두로 교사 142명 가운데 박사가 15명이고 상당수가 석사 이상의 학위를 갖고 있다. 또 아이비리그로 불리는 8개 동부 명문 사립대 출신이 17명이다.

물론 마그넷 스쿨이라 해도 교사의 선발이나 대우에서 다른 공립학교와 다른 특별한 혜택은 없다. 카운티의 공립 교사들 가운데 교장이 원하는 교사를 선발하고 방출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교장 역시 치열한 경쟁을 통해 공모한다.

그 대신 교사들은 커리큘럼에 대해 철저한 자율성과 권한을 갖는다. 같은 과목을 가르치는 교사들 간의 토론과 합의가 커리큘럼 개설과 변경의 절대 기준이다.

글레이저 교장은 “어려서부터 과학 수학에 재능을 보인 도전적인 학생들과, 가르쳐 보겠다는 의욕이 넘치는 교사들이 함께 선(善)순환 구조를 만들어 낸다”며 “우수한 학생들에게 이 학교가 아니면 받지 못할 자극과 도전을 맛볼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게 영재교육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알렉산드리아(버지니아주)=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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