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살아있다/만주 사변下]중국에서 본 잔류 고아

  • 입력 2007년 12월 24일 05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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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 본 잔류 고아

《구 만주의 대지에 남겨진 ‘잔류 고아’를 둘러싸고, 일본에서는 국가의 책임이 문제시 되고 있다. 한편, 중국 사람들의 눈에는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 잔류 고아

종전 시에 구 만주(중국 동북지방)에 살고 있던 약 155만 명의 일본인 가운데, 구 소련군의 침공 등 혼란 속에서 친족과 사별하거나 중국인에게 거두어져, 중국에 남겨진 아이들이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종전 시, 13세 미만이었던 사람을 ‘잔류 고아’로, 13세 이상이었던 여성을 ‘잔류 부인’이라 규정하고 있다. 1972년 중일국교 정상화 이후, 귀국한 잔류 고아는 약 2,500명을 웃돌았다.

귀국 후 고아들은 일본어 습득 문제 등으로 경제적인 자립이 어려워 생활보호를 받은 사람도 많다. 국가가 조속한 귀국과 자립으로의 지원을 게을리하였다 하여 2002년부터 전국 각지에서 국가 배상 청구 소송이 일어났다. 금년 7월, 고아들과 여당 사이에서 새로운 자립 지원책을 실시할 것을 합의하고 의원 입법 성립을 향한 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민족의 너그러움’을 보여주는 역사

1981년 4월,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人民日報)에 한 기고가 게재되었다.

중일 우호협회 고문인 쨔오안뽀(趙安博) 씨가 쓴 “전후, 중국에 남은 일본인 고아 문제를 생각한다”였다. 이는 중국 주요 미디어가 처음으로 일본인 잔류 고아 문제를 해설 형식으로 전한 기사라고 여겨진다.

기사에서는 그 해에 시작된 일본인 잔류 고아의 육친 찾기 방일 조사를 전하며 이렇게 맺었다. “나는 많은 중일의 친구들이 이해해 줄 것으로 믿는다. 괴로운 전쟁 시대에 중국 인민이 일본 인민에게 보낸 깊은 정은 중일 우호의 더 나은 발전을 위해 큰 의의를 가진다.”

그 이후 중국에서 이 문제는 중일 우호의 중요함을 호소는 수단으로써 거듭 전해졌다.

종전 당시, 구 만주에 있던 약 155만 명의 일본인 중, 20만 명 이상이 굶주림이나 추위 등으로 죽었다. 일본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귀국에 관한 비참한 기억은 중국에 있는 잔류 고아에 대한 ‘민족의 관용’을 보여주는 역사와 표리관계에 있다.

“전후, 2,808명의 일본인 아이가 중국에 남겨져 고아가 되었다. 전쟁의 상처로 가득찬 중국인이 그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했다”. 금년 4월, 일본을 방문한 원저바오(温家宝) 수상은 중국 국내에 생중계된 국회에서의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의 잔류 고아 관계 연락 조직인 ‘중국 하얼빈시 중국 체류 일본 고아 양부모 연의회(中国하얼빈市日本留華孤児養父母聯誼会)’의 이사장인 첸이엉치에(陳英潔) 씨(55)는 누나가 잔류 고아였다. 첸(陳) 씨는 이렇게 강조했다.

“당시 왜 중국인은 일본 아이를 양자로 삼았을까. 나도 많은 사람에게 물었다. 아이에게는 죄가 없다. 정말로 불쌍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귀국을 기뻐하는 모습에 복잡한 심정

이러한 중국 당국의 자세나 관계자의 생각에도 불구하고, 중국인 잔류 고아 문제에 대한 관심은 결코 높지 않다. 중국에서 이 문제에 대한 보도가 활발하다고는 볼 수 없다. 특히 고아들이 육친과 재회하는 장면이 중국 텔레비전에 방영되는 것은 이례다.

그 이유에 대해서, 잔류 고아 문제에 대한 저작을 갖고 있는 베이징우전대학(北京郵電大學)의 왕후원(王歓) 교수(사회심리학)는 “중국인 입장에서 말한다면, 이는 프라이드를 손상시키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귀국한 잔류 고아는 그 기쁨을 눈물 흘리며 말한다. 일본인에게는 감동적인 장면이지만, 많은 중국인의 심정은 복잡하다고 한다. “그럼, 중국은 지옥인가, 우리 중국인들이 그렇게 당신들을 나쁘게 대하였나라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민족감정이 드러나게 되고 어색해져 버린다”

적지않은 고아들이 귀국 후에는, 중국과의 연락이 소원해지는 것도 그 하나이다. “고아들의 일본 생활은 편하지 않다. 체면도 있고, 연락을 하는 것은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하더라도 중국에서는 ‘풍족한 곳에 가서, 우리들 일은 잊었군’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

고독한 양부모에게 동정

중국에서 잔류 고아 문제 연구가 본격화된 것은 1990년대 후반에 들어서라고 한다.

2005년에 랴오닝(遼寧) 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의 장쯔우쿤(張志坤) 연구원과 꿴야신(關亜新) 부연구원이 정리한 『일본 잔류 고아 조사 연구』(사회과학 문헌 출판사)는 중국에서 학문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를 정리한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서로 평가된다. 중국 정부계의 씽크탱크 중국 사회과학원이 정부의 위탁을 받아 시작한 역사 연구 프로젝트의 일환이다.

“일본인 잔류 고아의 역사는 세계사 중에서도 흔치않은 일이 아닌가. 이 만큼 많은 수의 패전국 아이들을, 전승국 인민이 원한을 잊고 양자로 받아들인 것은 간단한 일이 아니다”라고 장(張) 씨는 말했다.

주된 연구 대상으로 선택된 이들은 잔류 고아들의 양부모나 귀국하지 않고 중국에 남은 잔류 고아들이었다. 중국에서 이 문제가 논의될 때는 늘 양부모에게 시선이 간다.

“중국의 양부모들은 반드시 생활이 어려워서 곤란해 하는 것만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정신적인 고독이다. 연로한 그들은 자식이 수시로 자신을 찾아와 주기를 바라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지원이 필요하다.”

이 연구서에는 일본인이 아이를 맡길 때 금전을 양부모에게 건네주었다는 양부의 증언과,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이유로 고아를 맡았다는 양모의 이야기도 나온다.

중국에서는 노후에 아들이나 딸에게 의지하는 것을 행복이라고 여기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강하다. 중국의 지원 관계자는 “중국인은 일본으로 떠난 고아들보다, 고아들이 귀국한 후의 양부모들의 생활을 동정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광둥성(広東省)의 지방 신문 “남방도시보(南方都市報)”는 2005년 3월에 ‘양부모는 고독 속에서 죽어간다’라는 기사를 게재했다. 그 기사 안에서, 창춘(長春)에 사는 81세의 양모는 “나는 일본 군인에게 배를 차여서 유산했다.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한다. 그런데, 조그만 여자 아이(고아)를 보았을 때 원한은 머리 속에서 사라졌다. 내가 키우지 않으면, 이 아이는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라고 이야기한다. 1990년 일본에 귀국한 딸은 매년‘귀향’하지만, 한 번에 체재 가능한 날짜는그리 많지 않다. 양모는‘외롭게 살아 가고 있다’라고 기사는 전했다.

원(温) 수상은 일본에서 한 연설에서, 고아들이 양부모에게 감사하고 있다는 것도 언급하며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양부모들의 인도주의 정신과 자애의 마음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이 은혜를 영원히 잊지 않는다.”

이것은 한편으로, 현 중국의 광범위한 국민이 받아 들일 수 있는 감정을 의식한 것인지도 모른다.

(선양(瀋陽)=후루야 고이치 古谷浩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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