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로저 코언]차베스, 위선의 혁명

  • 입력 2007년 12월 7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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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최근 혁명적인 사회주의 정책 추진을 위해 개헌을 시도하다 국민투표에서 적은 표 차로 패배했다. 넘쳐 나는 석유를 등에 업고 미국의 콧대 꺾기에 혈안이 된 베네수엘라는 세계를 관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다. 다음은 베네수엘라에서 바라본, 현대 정치 세계를 움직이는 여덟 가지 법칙이다.

1. 무역이 정치를 이긴다. 차베스 대통령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을 ‘악마’라고 부르는 동안에도 양국 간 무역 교류는 넘쳐 났다. 올해 베네수엘라의 대미 수출액은 370억 달러, 수입액은 10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차베스 대통령은 자신이 주창한 ‘21세기 사회주의’를 위해 미국 차와 옷을 사지 못해 안달이다.

2. 세계화가 민족주의를 낳는다. 정치인들은 금융과 기술의 흐름으로 줄어든 권한을 국가 정체성 강조로 만회한다. 차베스 대통령의 개헌 지지 호소 연설문은 정작 사회주의 이념은 언급하지 않은 대신 식민주의, 미 중앙정보국(CIA)과 CNN의 위협에 관한 언급으로 가득했다.

3. 석유는 권력을 집중시킨다. 베네수엘라의 석유는 정제하기 어려워 싼 편이지만 차베스 대통령은 석유를 팔아 월 40억∼67억 달러를 손에 쥔다. 투명하지 않은 사회에 사는 사람에게 하루 1억 달러가 넘는 돈을 손에 쥐여 주면 누구나 차베스 대통령처럼 2050년까지 통치하겠다고 나서게 된다. 정치학자 마르가리타 로페스 마야는 “‘석유 국가’는 권력을 재집중화하고 사유화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4. 반미(反美) 네트워크는 건재하다. 차베스 대통령은 석유로 번 달러를 이용해 쿠바 니카라과 볼리비아 등 우군과의 유대를 강화하고 있다. 이란 러시아 중국 아르헨티나 에콰도르와의 관계도 더욱 끈끈해졌다. 고유가 때문에 미국의 지배력은 더욱 빨리 쇠퇴하고 있다.

5. 이데올로기는 입맛대로 가져다 붙인다. 공산주의가 종교를 아편이라고 폄훼하던 시대는 지나갔다. 차베스 대통령은 예수를 ‘최초의 혁명가’로 부른다. 그는 여권 신장을 강조하지만 베네수엘라에서 낙태는 여전히 불법이다. 중국의 공산주의가 자본주의가 되고 러시아 민주주의는 레닌주의와 비슷해진 세상이다. 중요한 건 권력 유지뿐이다.

6.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해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9년 전 권력을 잡은 후 수차례 국민투표와 선거를 치렀다. 그러나 TV 방송국이 폐쇄되고 국고에서 수백억 달러가 사라지며 부패는 일상이 됐다. 차베스 대통령이 국민투표 결과에 승복하더라도 투명하고 책임 있는 사회 건설에 나설지는 미지수다.

7. 유토피아는 살아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혁명’의 기치를 내걸고 의료 보장과 무상 교육을 약속하며 집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개인적 야망을 위해 통제 시스템을 확대하고 있다. 가격과 환율을 통제하고 지속 가능하지 못한 보조금을 남발하는 가짜 경제 체제에서는 연고가 있는 자본가만 이득을 보게 된다. 국가 경제가 파산하면 빈곤층은 고통 받고 의지할 곳도 없게 되지만 유토피아적 환상에 대한 갈망은 여전하다.

8. TV의 힘은 막강하다. 베네수엘라 국민은 선술집에서 미국 프로 농구와 야구 경기를 본다. 미국 대사관에는 비자를 받으려는 줄이 늘어서 있다. 상점에는 미국산 제품이 가득하다. 정치인과 달리 소비자는 선택의 폭이 넓다. 차베스 대통령도 이 같은 친미적 현상을 바꾸려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지는 못할 것이다.

―카라카스에서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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