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미 독재자는 독재자가 아니다?

  • 입력 2007년 11월 16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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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칼럼니스트, 이중잣대 비판

反美 차베스에 냉담… 테러戰 협조 무샤라프엔 호의

美전략에 도움되면 워싱턴 초청… “좋은 친구” 환대

“그가 나쁜 놈일지는 몰라도 우리 편이야.”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 미국 대통령은 1930년대 초 정권을 잡은 니카라과의 독재자 아나스타시오 소모사를 줄곧 지지했다. 소모사 정권이 폭압적이고 살인적인 통치를 했지만 단지 친미(親美)적인 행태를 보였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의 국익에만 초점을 맞춘 이런 행태는 지금도 변함이 없어 보인다. 로이터통신 칼럼니스트 번드 디버스먼 씨는 15일 ‘미국식 독재자 대처법’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미국이 입맛에 따라 세계 각국의 독재자들을 분리해 대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디버스먼 씨는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 대통령과 파키스탄의 페르베즈 무샤라프 대통령에 대한 미국의 180도 다른 대처를 예로 들었다.

좌익이면서 반미를 앞세우는 차베스 대통령이 베네수엘라의 반정부 성향 TV 방송국을 폐쇄하자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언론과 집회, 양심의 자유’를 거론하며 문제를 제기했다. 차베스 대통령을 나치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에 비유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최근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한 무샤라프 대통령에 대해서는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차베스 대통령보다 훨씬 가혹한 방식으로 언론을 통제한다. 모든 민간 방송채널은 물론이고 BBC와 CNN 시청까지 중단시켰지만 미국은 침묵했다.

디버스먼 씨는 이런 차이는 무샤라프 대통령이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에 협조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과거 미국의 정책판단 잣대였던 친미 여부나 냉전시대의 반소(反蘇) 동맹이 9·11테러 이후에는 테러와의 전쟁 협조 여부로 바뀌었을 뿐이다.

미국이 필요 이상으로 관용을 베푸는 독재자 그룹도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지난해 워싱턴으로 초청해 환대했던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라이스 국무장관이 ‘좋은 친구’라고 칭한 적도기니의 테오도로 오비앙 응게마 대통령은 전략적으로 중요하고 석유자원이 풍부한 국가의 독재자였다.

결국 미국이 내세우는 ‘민주주의 확산과 독재 반대’는 허상에 불과하다는 게 디버스먼 씨의 주장이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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