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한국인 10만 넘어… “우리도 주류”

  • 입력 2007년 10월 2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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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미국에 입양된 한인 입양자와 미국 가족 100여 명이 7월 한국을 방문해 서울 등원초등학교의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c최혁중  기자
어려서 미국에 입양된 한인 입양자와 미국 가족 100여 명이 7월 한국을 방문해 서울 등원초등학교의 수업을 참관하고 있다.c최혁중 기자
미국 워싱턴의 명문 조지타운대에 다니는 제인 워너듀(가명·21·여) 씨의 1주일 시간표를 보면 정신이 아찔할 정도로 바쁘다.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빡빡하게 강의스케줄과 봉사활동, 서클활동 일정이 짜여 있고 그런 틈틈이 점심시간이나 오후에 ‘대학병원’ ‘미용실’ 등의 글자가 적혀 있다. 워너듀 씨가 짬을 내 아르바이트를 하는 곳이다. 자신의 꿈인 한국 방문 여비를 마련하기 위해서다.

워너듀 씨는 갓난아기 때 미국에 입양 와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다. 미국 대학생들이 봄방학이면 해변으로 놀러 가느라 정신이 없지만 그녀는 지금도 봄방학이나 연휴가 되면 뉴저지의 부모에게 달려가 함께 시간을 보낸다.

그럼에도 철들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한국에 꼭 가보고 싶다는 꿈을 키워 왔고, 그 여비만큼은 반드시 자기 힘으로 마련하겠다고 결심했다. 부모도 적극 격려해 줬다.

방과 후엔 한국인 2세 동아리에서 부채춤을 배운다. 지난봄엔 매일 저녁 2시간씩 연습해서 성공리에 부채춤 발표회를 가졌다. 그에게 한국은 왠지 한없이 궁금하고 정이 가는 이름이다. 자신을 버린 매정한 사회라는 생각은 해 본 적이 없다.

워너듀 씨처럼 어느덧 성인으로 자라난 미국 내의 ‘입양 한국인’들이 미국 주류 사회는 물론 코리안 아메리칸 커뮤니티의 당당한 일원으로 자리 잡고 있다.

18세 때 입양돼 대학교수를 거쳐 워싱턴 주 상원 부의장에 오른 신호범(72) 의원을 비롯해 정계 학계 문화계 등 곳곳에서 입양아 출신 성공스토리의 주역들이 늘어나고 있다. 현재 미국 내 한국인 입양자는 10만∼13만 명으로 추산된다.

지난달 개봉된 한국 영화 ‘마이 파더(My Father)’는 미국에 입양됐다가 주한미군으로 한국에 돌아온 아들이 결국 찾은 아버지가 사형수라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이 영화를 비롯해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해외 입양을 대하는 이미지는 뭔가 가슴 아프고, 부끄럽고, 미안함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다.

1953년 6·25전쟁 고아를 미국과 유럽의 부모들이 받아들이면서 시작된 해외 입양은 1970, 80년대 연평균 3000명 이상 입양기록을 낳기도 했다. 홀트아동복지회에 따르면 소득 향상과 출산율 저하, 미혼모 인식 변화 등으로 2005년에는 1600명 선으로 수치가 줄었다.

27일 미네소타 주 세인트폴에 위치한 옥스버그대에서는 입양 한국인들이 마련하는 의미 있는 행사가 열린다.

1990년대 한국에서 딸과 아들을 입양한 스티브 운로 씨 부부가 입양 자녀들의 정체성 찾기를 돕기 위해 10년 전 시작한 계간지 ‘코리안 쿼털리(Korean Quarterly)’의 창간 1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다.

행사 내용은 여느 한인커뮤니티 행사와 다를 바 없다. 김덕수 사물놀이 패에서 활동했던 김동원 씨가 출연하고, 입양아와 미국 가족이 참여하는 풍물패 ‘신바람’의 공연도 있다. 뮤지컬 공연과 한국 미술품 경매도 빠지지 않는다.

입양 문화가 발달한 북유럽계 이민자의 후손이 많은 미네소타 주에는 한국인 입양아가 무려 2만 명에 달한다. 주 전체 인구가 510만 명에 불과하고, 한국 이민자 수가 1만 명에 불과하다는 점에 비춰 볼 때 이 지역에서 한국계 입양아의 존재는 유독 두드러진다.

동계올림픽 메달리스트 토비 도슨, 백혈병과 골수 이식으로 관심을 끌었던 전 공사 생도 성덕 바우만 씨 모두가 미네소타 출신이다. 부모의 정성 속에 자란 한국계 입양자의 대학진학 비율은 90%에 이른다는 통계도 나와 있다.

코리안 쿼털리의 편집장으로 일하는 마사 비커리 씨는 26일 전화통화에서 “이 행사는 입양아만을 위한 게 아니라 한인 커뮤니티 전체를 위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입양된 한국 아이가 불쌍하고 한국의 20만 입양아 기록은 수치스럽다는 한국적 시선이 아니라, 밝고 긍정적으로 생각해 달라는 주문으로 들렸다.

물론 많은 입양아들은 미국 가정에서 미국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과연 한국 태생이란 점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게 된다.

특히 백인 비율이 88%(미국 평균 69%)에 이르는 미네소타 주처럼 학교 전체에서 동양인이 몇 안 되는 환경에서 자라는 입양아들은 한국인이라는 의식을 못하는 경우도 많다.

브라이언 밸컴(27) 씨는 “현재로서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생각이 없다. 한국의 피를 갖고 태어났다는 게 뭘 의미하는지도 모르겠고, 뭔가 내가 놓치고 있다는 느낌도 없다. 미국인으로 사는 게 편하다”고 말한다.

올해 2월 워싱턴의 주미 한국대사관을 찾아 ‘나의 입양’을 소재로 강연한 디 디울프(46) 퍼듀대 교수는 무지→호기심→한국방문→한국사랑으로 이어진 자신의 삶을 회고했다.

“네덜란드계 가족 속에서 한국을 모르고 자랐지만, 39년 만에 방문한 서울 거리의 아름다움에서 내가 떠났던 옛 기억 속의 한국이 지니던 어두운 모습을 덜어낼 수 있었다.”

요즘 미국 내 입양자들은 단체를 만들거나,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공유하며 공감대를 쌓아 가고 있다. 2004년 입양자단체(IKAA)가 만들어지면서 올여름에는 700명에 가까운 해외 입양자가 한국을 방문했다.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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