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어도 안쓰고… 없어서 못쓰고… ‘진통제의 희비극’

  • 입력 2007년 9월 12일 03시 01분


코멘트
日선 “참으면 되지 그걸 왜”

참을성 많은 탓에 세계최저 사용

평균수명, 1인당 소득, 의료비 지출 같은 대부분의 통계 지표가 선진국 수준을 나타내는 일본. 그러나 예외도 있다. 모르핀을 비롯한 의료용 마약물질 소비에 있어서 일본은 불가리아나 남아프리카공화국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는 평소 고통을 잘 참는 국민성을 가진 데다가 일본 내에서 모르핀 등 의료용 마약물질에 대한 거부감이 여전히 크기 때문이라고 뉴욕타임스가 10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모르핀 등 의료용 마약물질은 대부분 선진국에서 소비된다. 2005년 기준으로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 호주 등 선진 6개국이 전체 소비량의 79%를 차지했다. 그러나 세계 2위의 경제대국 일본은 1인당 미국의 12분의 1 정도를 소비하는 데 그쳤다.

모르핀은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는 환자의 고통을 경감시키기 위해 가장 흔히 쓰이는 약물. 그런데도 일본에서 잘 쓰이지 않는 것은 고통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일본 특유의 문화가 가장 큰 이유라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일부 병원에는 ‘통증이 있으면 이야기 하세요’라는 계도용 포스터까지 붙을 정도다.

그러나 최근 들어 모르핀에 대한 편견이 차츰 줄어들면서 일본 내에서도 모르핀을 처방하는 사례가 부쩍 늘어나는 추세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빈국 “아파도 구할 수 없어”

마약확산 우려로 규제 심해 고통

한편 뉴욕타임스는 같은 날 별도의 특집 기사에서 진통제 없이 고통 속에서 투병하는 빈국(貧國)의 중환자들이 겪는 실상을 전했다.

유방암을 앓고 있는 시에라리온의 여성 자이나부 세세이 씨는 암세포가 뼛속까지 침투하면서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지만 모르핀 주사를 맞아본 적이 없다.

세세이 씨의 경우처럼 빈국에서 수백만 명이 고통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것은 돈이 없어서가 아니다. 마약 확산에 대한 우려 때문에 규제가 심해 의료용 모르핀을 제대로 구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의료시스템이 정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마약물질에 대해 적용되는 엄격한 규제를 풀어 주면 사회 전반에 마약 문제가 창궐할 우려가 크다는 것.

이에 따라 의사들은 말기 암 환자들에게도 진통효과가 모르핀의 10% 수준인 약한 진통제나 타이레놀밖에 처방해 주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같은 여러 가지 이유로 진통제 소비는 선진국과 후진국 간의 불균형이 특히 심하다. 2004년 기준으로 미국의 모르핀 1인당 소비량은 시에라리온의 1만7000배에 달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