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납치-살해-석방 뚜렷한 기준 없어 ‘혼란’

  • 입력 2007년 7월 26일 03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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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이 수시로 납치 사건을 일으키고 있으며 때로는 뚜렷하지 않은 이유로 피랍자들의 생사가 갈린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정부 및 피랍자 국적 정부와 ‘인질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요구조건이 전부 수용되지 않아도 인질을 석방한 적이 있다. 그러나 상황에 따라서는 무참하게 살해하기도 했다.

2003년 10월 납치된 터키 도로 기술자는 한 달 만에 석방됐다. 탈레반은 교도소에 구금된 동료 8명의 석방을 요구했고 아프간 정부가 2명의 수감자를 석방하는 것에 양측이 합의한 데 따른 것이다.

탈레반은 2004년 10월에는 유엔 직원과 외교관 3명을 억류해 협상을 벌였다. 당시 탈레반 수감자 26명의 석방을 요구조건으로 내걸었으나 아프간 정부와 유엔 측은 거부했다. 그러나 한 달 뒤 피랍자들은 무사히 풀려났다. 석방 경위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다.

2004년 12월에는 터키 도로 기술자 에유프 오렐 씨가 납치 하루 만에 시신으로 발견됐다. 별다른 요구조건도 제시하지 않고 협상도 진행되지 않은 상태였다.

탈레반은 또 2005년 5월 이탈리아 구호단체 직원을 납치해 무장세력 두목과 그의 어머니의 석방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그러나 이 직원은 3주 뒤 무사히 풀려났다.

같은 해 8월 납치된 영국 기술자는 희생됐고 11월 인도인 도로 기술자는 이틀 만에 참수된 채 발견됐다.

탈레반은 2006년 2월 영국 안보업체에 근무하던 네팔인 직원 2명을 납치했다. 당시 한 명은 풀려났으나 나머지 한 사람은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러나 사망자는 병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해 3월에는 미군기지 직원 4명이 살해됐고 4월엔 인도인 기술자도 참수됐다.

2006년 10월 납치됐던 이탈리아 사진기자는 20일 만에 석방됐다. 탈레반은 협상을 벌여 이탈리아군의 철군을 요구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철군을 거부했지만 거액의 몸값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3월 납치된 이탈리아 기자는 15일 뒤 풀려났다. 그러나 함께 납치된 아프간 통역 및 운전사는 살해됐다. 당시 이탈리아 정부는 탈레반이 요구한 수감자 석방을 아프간 정부에 압력을 넣어 관철시켰다. 궁지에 몰린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이번 한 번뿐”이라고 강조했지만 테러집단과 협상했다는 이유로 국제사회의 비판이 이어졌다.

카르자이 대통령이 이때 ‘이번 한 번뿐’이라고 밝혀 이번 한국인 피랍자 석방에서 ‘교환 석방’ 협상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올해 4월에는 프랑스 구호단체 직원 2명이 납치됐다 두 달 만에 석방됐다.

이번에 한국인 피랍 하루 전에 납치된 독일인 2명 중 한 사람은 아직 생존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한 명은 숨진 채 발견됐으며 총상이 있었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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