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쌍둥이 정권에 발목잡힌 EU헌법

  • 입력 2007년 6월 22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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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란드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왼쪽)과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총리.
폴란드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왼쪽)과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총리.
‘폴란드의 쌍둥이 형제가 유럽연합(EU) 헌법 부활의 발목을 잡고 있다.’

EU 헌법을 부활시키기 위해 21일 개막된 EU 정상회의가 폴란드의 거부권 행사에 따라 합의 도출에 난항을 겪고 있다고 AP AFP 등 주요 외신들이 보도했다.

이번 정상회의는 2005년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국민투표에서 부결된 EU 헌법 초안을 대체할 새로운 조약을 체결하기 위해 마련됐다. 그러나 폴란드의 대통령과 총리를 맡고 있는 레흐와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형제가 독일의 침공과 학살이라는 뼈아픈 역사 때문에 의장국 독일이 주도하는 조약 체결에 어깃장을 놓는 형국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제안한 조약안 가운데 폴란드가 반대하는 조항은 인구를 기준으로 한 ‘이중 다수결’ 투표 제도. 이에 따르면 27개 EU 회원국 가운데 과반수인 15개국 찬성, EU 전체 인구의 65% 찬성이라는 두 가지 조건을 만족시켜야 정책 결정을 할 수 있다.

폴란드로서는 인구가 3800만 명에 불과한 데다 독일(8200만 명)이 최대 수혜국이 되는 것도 못마땅하다. 폴란드는 ‘인구가 적은 나라의 불이익을 줄이도록 인구를 제곱근으로 계산해 의결권을 산출하자’는 제안을 내놓았다.

야로스와프 카친스키 총리는 1939년 독일이 침략하지 않았다면 폴란드의 인구가 6600만 명이 됐을 것이라며 “죽을 각오로 우리 제안을 관철하겠다”고 강조했다. 레흐 카친스키 대통령은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 2차 세계대전 전사자 유해 반환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새로운 카드도 빼들었다. 카친스키 형제는 아버지가 점령군 독일에 대항해 싸우다 숨진 사적인 악연도 있다.

한편 영국은 자국의 노동 조세 복지법과 충돌할 우려가 있다며 조약안의 주요 내용인 기본권 헌장 채택을 반대해 조약 체결 전망을 어둡게 했다. 토니 블레어 총리는 “외교권 사법권 조세권을 EU에 양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메르켈 총리는 개별 국가의 국민투표를 거쳐야 하는 ‘헌법’ 대신 ‘조약’이라는 형식을 채택하고 EU 국가와 국기 등 상징물 관련 조항도 삭제했다. 그러나 EU 대통령과 외교장관직을 신설하는 등 헌법 초안의 핵심 조항은 그대로 살아 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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