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난민촌서 ‘검은 씨앗’이 자란다

  • 입력 2007년 5월 2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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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정부군과 팔레스타인 난민촌 내 민병조직 간 유혈 충돌이 사흘째 계속되고 있다. 1970∼90년대 레바논 내전 이후 최악의 교전 상황이다.

23일에는 산발적인 교전으로 진정되는 양상인 듯했지만 레바논군은 민병조직을 소탕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조만간 치열한 전투가 재개될 듯하다. 사건이 장기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내전 재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치외법권 상태로 방치돼 온 팔레스타인 난민촌은 이슬람 급진주의 세력의 배양처가 되기 쉽다고 지적한다. 이번에 사건이 터진 레바논 북부의 나르엘바레드 난민촌과 민병조직 파타 알이슬람은 특히 레바논 당국과 미국이 주목해 온 요주의 대상 중 하나다.

▽테러조직의 도피처=빈곤과 박탈감, 과밀한 인구, 인정받지 못하는 사회적 권리, 직업 제한을 비롯한 유무형의 규제들….

레바논 내 팔레스타인 난민촌 주민 대다수가 겪는 문제다. 레바논에는 12개의 난민촌에 난민 40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젊은이들의 일탈과 이슬람 급진주의 심취는 자연스럽다.

23일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런 실태를 전하면서 현지 관계자들의 말을 빌려 “난민촌 내 청소년들이 이슬람 급진주의 단체들에 쉽게 동화된다”고 전했다. AP통신도 “레바논에 테러리스트들이 집결하면서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같은 곳’으로 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테러단체 의혹을 받고 있는 각종 민병조직이 난민촌 내에서 급속히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사실이 이런 현실을 뒷받침한다. 파타 알이슬람도 지난해 11월 만들어진 신생단체지만 난민촌 주민들의 출입을 통제하며 지역 내에서 큰 권력을 휘두르고 있다.

수도 베이루트의 레바논 정부 관계자는 “난민촌 내부는 접근도 잘 안 될뿐더러 당국의 통제도 힘을 잃은 상황”이라며 “돈만 있으면 누구라도 무기를 살 수 있고 젊은이들은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인다”고 말했다.

난민촌 내 이슬람 급진주의 단체들은 잘 훈련된 조직을 갖췄고 소말리아나 예멘, 알제리, 시리아 등지에서 온 용병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시리아는 부인하고 있지만 시리아가 자금과 무기를 지원한다는 의혹도 끊이지 않는다.

남부 도시 시돈 근처의 난민촌 내 조직인 오스바트 알이슬람은 9·11테러 이후 미국 당국의 테러조직 목록에도 올라 있다.

또 다른 민병조직 준드 알샴은 지난해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의 미 대사관 폭탄테러 시도에 연루됐다는 혐의를 받는다.

▽혼돈 속 레바논=교전이 발생한 나르엘바레드 난민촌에서는 이날 폭격을 피하려는 난민들의 피란 행렬이 이어졌다. 유엔에 따르면 인근의 다른 난민촌으로 떠나는 피란민이 1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레바논 정부군이 난민촌 근처 은행 강도를 쫓는 과정에서 발생한 이번 교전은 탱크가 동원된 공격으로 번지면서 70여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상태. 휴전 논의까지 무산되자 난민들은 “정부군이 과잉 진압한다”며 분노를 터뜨렸다. 다른 난민촌 주민들까지 항의시위에 나서 사태는 확산될 조짐을 보인다.

이를 우려한 레바논 정부는 22일 미국에 2억8000만 달러 규모의 군사 지원을 요청했다. 숀 매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은 “백악관이 추가 지원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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