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新천재론]<8>뉴욕필 영아티스트콩쿠르 최연소 우승 지용군

  • 입력 2007년 5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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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세 나이로 미국 뉴욕필 영 아티스트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 미국의 대형 클래식 매니지먼트사인 IMG와 최연소 아티스트로 계약을 한 피아니스트 지용. 무대에 서면 화려한 테크닉과 성숙한 연주를 들려주는 그는 겉보기엔 평범한 16세 고교생이다. 사진 제공 IMG
10세 나이로 미국 뉴욕필 영 아티스트 콩쿠르에서 최연소 우승, 미국의 대형 클래식 매니지먼트사인 IMG와 최연소 아티스트로 계약을 한 피아니스트 지용. 무대에 서면 화려한 테크닉과 성숙한 연주를 들려주는 그는 겉보기엔 평범한 16세 고교생이다. 사진 제공 IMG
2001년 11월 미국 뉴욕의 링컨센터 에이버리피셔홀. 1992년 헬렌 황이 우승한 뒤 9년 만에 열린 ‘뉴욕 필하모닉 영 아티스트 콩쿠르’에는 1만여 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그런데 최종 결선 우승자는 놀랍게도 열 살짜리 꼬마였다. 피아노 페달에 발이 닿지 않을 정도로 앳된 동양 소년. 그는 거장 쿠르트 마주어가 지휘하는 뉴욕 필하모닉과 함께 모차르트 피아노협주곡 20번을 연주해 청중의 뜨거운 기립박수를 받았다.

피아니스트 지용(한국명 김지용·16). 9세에 미국으로 이민가 10세에 뉴욕 필 콩쿠르 최연소 우승, 11세에 미국 굴지의 클래식 매니지먼트사 IMG와 최연소 아티스트로 계약. 바이올린과 달리 악기 사이즈가 커 신동이 극히 드문 피아노 분야에서 그는 이렇게 혜성처럼 등장했다.

그는 국내에 있는 수많은 음악영재가 콩쿠르에 목을 매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길을 걷고 있다. 예브게니 키신,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소속돼 있는 매니지먼트사를 통해 실전 무대에서 자신의 세계를 넓혀 가고 있는 것이다.

○ 재능의 발견

지용이 5세 때 일이다. 교회에 다녀온 가족은 방안에서 쉬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거실에서 너무도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들렸다. 밖으로 나간 어머니 오경해 씨는 놀라움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피아노 ‘도레미파솔라시도’도 배워 본 적이 없는 지용이가 아름다운 멜로디를 연주하고 있는 것이었다.

“지용이가 교회에서 들은 성가와 동요 같은 곡을 피아노로 치고 있더군요. 이후에도 연주회에서 들은 곡, 차 타고 오면서 라디오에서 들은 곡을 피아노로 치며 놀았어요. 절대음감이 있다는 걸 알고 음악교육을 시작했죠.”

부산에 살던 지용의 부모는 둘 다 초등학교 교사였다. 지용은 7세 때부터 주말마다 서울에 올라와 피아니스트 권마리 씨에게 레슨을 받았다. 8세부터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예비학교에 입학했다. KTX도 없던 시절. 금요일 밤에 5시간이 넘는 기차를 타고 서울에 와서 일요일 막차를 타고 월요일 새벽에야 부산에 도착하는 힘든 일정이었지만, 지용은 피아노를 배우는 재미에 푹 빠져들었다.

“일곱 살짜리 꼬마가 정말 보석 같은 소리를 갖고 있더군요. 귀가 좋아 자기가 치는 소리를 느끼면서 음악을 만들어 냈지요. 어찌나 심취해서 치던지, 몸이 작아 의자에서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높은 건반을 치기에 내가 손으로 붙잡아 준 적도 많지요.”(권마리 씨)

9세 때 부모는 과연 지용이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어 여름방학 때 미국을 찾았다. 지용을 본 미국 메네스 음대의 학장과 김유리 교수는 미국 유학을 권했다. 김 교수는 아무런 연고도 없이 2000년 3월 미국에 이민 온 지용의 가족에게 은인이었다. 그는 지용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주고, 수많은 스폰서 및 매니지먼트 관계자와 연결해 주며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 천재로서 평범하게 살아가기

“우리는 지용을 60∼70세까지 연주하게 될 아티스트로 보고 있습니다. 너무 매스컴에 노출되거나 학교생활이 힘들 정도로 연주여행을 다니게 되면 긴 인생을 볼 때 좋지 않습니다. 부모님께서도 절대 조급하게 강요하시면 안 됩니다.”

2002년 초. 지용과 매니지먼트 계약을 할 당시 IMG 회장은 지용의 부모에게 이 같이 신신당부했다고 한다. 전담 매니저인 살럿 리 씨는 “IMG는 15세 이하의 연주자와 계약을 한 적이 없는데 지용이는 10세에 불과했다”며 “어린 아티스트는 자칫 상처받아 쉽게 사그라질 수 있기 때문에 성인 연주자와는 전혀 다르게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IMG 측은 지용을 ‘제2의 예브게니 키신’으로 키운다는 목표 아래 학교생활과 레퍼토리 연습을 고려해 한 달에 한두 번만 콘서트 일정을 잡는 등 세심하게 관리하고 있다. 지용은 뉴욕 링컨센터, 앨리스 툴리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 홀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연했으며, 지난달에는 시카고 라비니냐 페스티벌에서 ‘라이징 스타’로 선정돼 독주회를 열었다.

그러나 학교에서 지용은 농구와 미식축구를 즐기는 지극히 평범한 고교생이다. 그는 뉴저지에 있는 공립 ‘라마포 하이스쿨’ 10학년에 재학 중이며, 주말에는 줄리아드음악원 예비학교에서 요헤베드 카플린스키를 사사하고 있다.

“친구들은 제가 프로 연주자라는 것도 잘 몰라요. 먼 곳으로 콘서트를 하러 갈 때면 친구들이 ‘이기고 돌아오라’고 말해 줘요. 피아노를 ‘플레이(Play)’하는 게 ‘연주’가 아니라 ‘경기’인 줄 알기 때문이지요.”(지용)

그렇다면 IMG 측은 왜 지용을 사립 예술고교가 아닌 공립학교에 다니게 하는 것일까.

“음악만 열심히 공부하는 것은 좋은 음악가가 되기 위한 절반의 조건이다. 나머지 절반은 인생의 경험이다. 만일 책을 읽지 않거나 또래 친구와 의미 있는 관계를 맺지 못한다면 자신만의 개성과 안목을 키울 수 없을 것이다. 지용이 평범한 일반 학생들과 함께 10대 생활을 즐기는 것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음악은 인생이며, 인생은 음악이기 때문이다.”(IMG매니저 샬럿 리)

○ 재능 있는 사람의 사회적 책임

“뉴욕을 걷다 보면 ‘홈리스’들이 너무 많아요. 쓰레기를 주워 먹고, 길거리에서 자는 사람들이죠. 저는 물론 좋은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지만, 그보다 먼저 음악을 통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으면 합니다.”

16세에 불과한 지용은 자선재단 설립을 준비 중이다. 그는 올해 10월 뉴저지의 한 교회에서 자선음악회를 열면서 ‘지용 파운데이션’을 출범시킬 예정이다. ‘재능을 가진 자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미국 문화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

지용은 “아버지께서 늘 ‘네 재능은 네 것만이 아니니 이웃을 위해 쓰라’고 말씀하셨다”며 “존경하는 뉴욕 양키스의 데릭 지터가 자선재단을 통해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것을 보고 나도 결심했다”고 말했다. 교사였던 지용의 아버지는 이민 후 뉴저지의 세탁소에서 일하며 힘겹게 살고 있다.

지용은 요즘도 하루 5시간 이상씩 피아노 연습을 한다. 그는 “가끔씩 피아노 연습이 힘들 때면 내가 음악을 통해 어려운 사람을 돕겠다는 꿈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말했다. 지용은 6월 2일 서울 LG아트센터에서 7년 만에 국내에서 독주회를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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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김대진 교수의 ‘한국 음악영재들은…’▼

지나친 노출로 ‘조로’ 우려…길게 보며 ‘내면’ 키워가야

쇼팽콩쿠르에서 공동 3위를 차지했던 임동민, 임동혁 형제, 영국 리즈콩쿠르에서 우승한 김선욱, 독일 뮌헨 ARD콩쿠르 우승자인 벤 킴…. 한국은 요즘 젊고 재능 있는 남자 피아니스트들의 전성시대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자칫 대중의 지나친 관심이 천재적인 젊은 음악가들을 너무 빨리 시들게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제기한다. 김대진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마우리치오 폴리니는 중압감에 쇼팽콩쿠르 우승 후 10년 동안 잠적했다”며 “한국의 영재들은 외로움 속에서 자기 내면을 키워 나가야 할 시기에 너무 많이 노출돼 있고, 너무 큰 기대를 받고 있어 불쌍하다”고 말했다.

그는 “음악 영재들의 특징은 누가 가르치지도 않았고, 경험이 많지 않은데도 어린 나이에 성숙한 소리를 낸다는 점”이라며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이에 비해…’라는 말이 괄호 속에 전제돼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는 10대, 20대 연주자들에게 인생을 다 살아 본 거장의 소리를 성급하게 요구하기 때문에 천재들이 조로(早老)할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대부분의 기획사들은 돈벌이를 위해 해외 아티스트를 수입하려고만 생각하지, 우리의 젊고 유망한 연주자들을 세계로 데리고 나갈 매니지먼트는 생각하지 않는다”며 “이 때문에 한국의 음악 영재들이 해외 진출을 위한 콩쿠르에만 목숨을 거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말했다.

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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