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공대 수업 재개 - 대규모 추도식

  • 입력 2007년 4월 24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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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총기 난사 참극이 발생한 지 정확히 1주일이 흐른 23일 오전 7시 15분.

조승희가 1차 총격으로 학생 2명을 살해한 웨스트 앰블러 존스턴홀 기숙사 앞에 100여 명의 학생이 모여들었다. 무고하게 숨진 에밀리 힐셔 씨와 라이언 클라크 씨를 떠올리며 모두가 손을 맞잡았다. ‘어메이징 그레이스’가 바이올린 선율을 타고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이 자리에는 대학교회가 사망자를 기리기 위해 준비한 하얀 깃발 33개가 배치됐다. 지난주 등장한 ‘조승희 추모석’에 이어 총기난사범의 영혼마저도 끌어안겠다는 배려가 돋보였다.

그러나 이날 새벽 대운동장에 있던 조승희 추모석이 사라진 것이 확인됐다. 추모석은 32개로 줄었다. 2kg 무게의 석회암이 사라진 자리에는 “조. 넌 우리의 힘 용기 동정심을 과소평가했다. 우리 마음은 찢어 놓았지만, 영혼은 손대지 못했어”라는 메모가 놓여 있었다.

공개 반대는 못했지만 32명 살인범의 추모석이 피해자와 나란히 놓이는 것이 불편했던 누군가의 일로 보였다.



간략한 첫 추모행사가 끝난 뒤 수업이 시작되면서 대학 구내는 1주일 전 서둘러 챙겼던 여행가방을 들고 기숙사로 돌아온 학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이들은 예전처럼 아침부터 강의실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모든 것이 이전과 똑같지는 않았다. 대학원생 데이비드 앤더슨 씨는 “이번 주엔 아무래도 공부에 집중하기 힘들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당국은 22일 학생들의 후유증을 고려해 학점관리 방침을 발표했다. 이번 학기 수강을 중단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으며, 5월 초인 학기말까지 학업에 복귀하지 않아도 중간고사 성적으로만 성적을 평가한다는 내용이었다.

대학당국은 이날 “정상적인 수업 진행을 위해 언론의 강의실 취재를 제한한다”고 밝혔다. 22일에는 일주일간 운영해 온 프레스센터를 폐쇄했다.

오전 9시 45분. 2차 총격으로 30명이 살해된 그 시각에 맞춰 대학 전체는 ‘침묵의 시간’을 갖고 기도와 묵념을 올렸다. 이어 대학본부의 종탑에서는 무고한 희생자 32명의 넋을 기리는 종소리가 느린 속도로 32회 울렸다. 땡∼ 하는 차가운 종소리가 거듭될 때마다 하얀 풍선 32개가 하나씩 하늘로 띄워졌다. 곧이어 학교의 상징색인 오렌지와 자주색 풍선 수천 개가 한꺼번에 하늘로 떠올랐다. 사라진 추모석, 33개의 깃발, 32개의 풍선…. 조승희를 품에 안으려 하면서도 100%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는 버지니아공대인의 마음은 이렇듯 흔들리고 있었다.

23일 교내 분위기는 지난 며칠간과 다르지 않았다.

추도행사에서나, 강의실로 이르는 길목에서 학생들은 소리 없는 눈물로 슬픔을 달랬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선 ‘Let's go Hokie(호키는 칠면조와 비슷하게 생긴 상상의 새로 이 대학의 마스코트)’라는 구호로 단합을 다지는 것도 눈에 띄었다.

19일 추모게시판 앞에서 만난 한 교수는 시끌벅적한 추도문화를 어색해하는 동양문화권 기자들에게 설명했다. 그는 “미국인은 아마 혼자서 슬픔과 고통을 이길 수 없다는 믿음이 있는 것 같다. 노래하고 구호를 외치며 일체감을 갖는 것이 ‘미국식 슬픔 극복법’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날 기자들의 질문에 후안 카를로스 우가르테 씨는 “낙담하거나, 툴툴 털고 일어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난 털고 일어나겠다”고 말했다.

추모 분위기가 이어지던 며칠 동안 대학구내에선 합동장례식이나 정치인의 현장방문 때 빚어지던 허식(虛飾)은 자연스럽게 배제돼 눈길을 끌었다.

블랙스버그(버지니아주)=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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