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정부 가난한 국민…알고도 못 고치는 ‘프랑스病’

  • 입력 2007년 4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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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더미처럼 쌓여 가는 정부 부채와 높은 청년 실업률에 허덕이는 프랑스가 미국의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로부터 ‘새로운 유럽의 환자’라는 진단을 받았다. 2000년대 초반 독일에 이어 두 번째다.

독일 경제는 ‘진단’ 후 정부 개혁과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대 등의 ‘치료’를 통해 수출이 크게 나아져 뚜렷한 회생의 길을 걷고 있다.

프랑스도 병명과 치료법은 나왔다. 하지만 쓴 약을 삼키려 들지 않는 유권자들을 의식한 정치인들이 개혁을 추진할 용기를 내지 못하는 상태라고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16일 ‘프랑스 병’을 집중 분석했다.

▽1인당 GDP 세계 19위로=경제 지표만 보아도 프랑스 경제가 얼마나 중증인지 알 수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5년 전 세계 8위에서 19위로 밀려났다. 1991년 프랑스의 GDP는 미국의 83% 수준이었으나 현재는 71%에 불과하다.

실업률은 25년째 8%를 웃돌고 청년 실업률은 22%가 넘는다. 성인 중 노동인구 비율(41%)은 세계 최저로 가장 일찍 일손을 놓는다. 장미셸 캉드쉬 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미국의 근로자는 프랑스인보다 퇴직할 때까지 37% 더 오랜 시간 일한다”며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이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고 말했다.

경직된 노동시장 못지않게 효율은 떨어지면서 덩치만 커 가는 정부가 민간 부문의 활력을 빼앗고 있다.

최근 10년간 정부 부문의 지출이 줄지 않은 나라는 유럽에서 프랑스뿐이다. GDP에서 정부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이 54%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1982년 400만 명이던 공무원은 500만 명으로 늘었다. 정부 빚은 GDP의 66%로 가구당 4만2000유로(약 5300만 원)이다.

정부의 몸집이 커지면서 떨어진 민간 부문의 경쟁력은 수치로 잘 나타난다. 세계 수출시장에서 프랑스의 비중은 1999년 5.4%에서 2005년 4.3%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유럽 내 프랑스의 수출 비중도 17%에서 14.5%로 떨어졌다.

▽유권자들 변화 거부감=프랑스의 차기 대통령이 ‘프랑스 병’에 과감히 칼을 댈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것이 파이낸셜타임스의 분석이다.

유권자들의 절반은 임금과 수당, 연금을 국가에 의존하고 있어 사회주의적 모델을 바꾸려는 계획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577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절반가량이 공무원 출신이어서 이들이 정부를 견제하기도 힘들다.

근본적으로는 자유시장경제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뿌리 깊은 불신과 정부 주도의 경제체제에 대한 그릇된 믿음이 변화를 거부하고 있다.

미국 메릴랜드대가 2005년 중국 등 20개국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자유시장경제가 가장 좋은 경제 제도’라는 데 동의하지 않은 국가는 프랑스뿐이었다.

경제학자 데이비드 더스마 씨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샤를 드골 대통령의 국가 주도 경제 정책이 성공을 거둔 것이 프랑스 경제에는 오히려 치명적인 독이 됐다고 진단한다. 프랑스 국민이 ‘국가가 나서면 경제가 잘되더라’는 편견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캉드쉬 전 총재는 “위기가 닥쳐야 개혁을 하는 나라는 위기가 끝나면 개혁도 멈춘다”며 “위기가 닥치기 전에 개혁을 함으로써 충격을 피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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