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1회 신문의 날]日 활자에서 활로 찾다

  • 입력 2007년 4월 7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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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와 교육계를 비롯한 일본 사회가 활자문화를 살리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문부과학성은 3차 ‘학교도서관 정비 5개년 계획’에 따라 이달 시작되는 2007회계연도부터 매년 200억 엔씩 5년간 1000억 엔을 기초자치단체에 교부하기로 했다.

앞서 2차 5개년계획의 예산 650억 엔보다 54%나 늘어난 규모다. 1000억 엔은 전국 초등학교와 중학교 도서관의 장서를 구입하는 데 쓰이게 된다.

학교도서관 예산이 대폭 증액된 것은 2005년 7월 국회에서 ‘문자·활자문화진흥법’이 제정된 데 따른 것. 어린이와 젊은층이 활자에서 멀어지는 현상을 국가적 위기로 받아들인 초당파 의원 286명이 2년 동안의 입법 활동을 거쳐 이 법을 통과시켰다.

활자문화진흥법은 문자와 활자가 ‘오랜 역사를 거치며 축적해 온 지식과 지혜를 계승하고 풍요로운 인간성을 만들며 건전한 민주주의를 발달시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규정하고 활자문화를 진흥시키는 것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라고 명기했다.

일본 정부는 2002년 ‘어린이 독서활동 추진법’을 제정한 바 있다.

교육계에서도 책 읽는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한 자발적인 움직임이 다양하게 나온다.

1988년 지바(千葉) 현의 한 고교에서 시작된 아침독서운동이 대표적인 사례. 수업을 시작하기 전 10분 동안 학생과 교사가 읽고 싶은 책을 자유롭게 읽자는 이 운동은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일본 2만여 개교에 확산됐다.

도서관들도 학교와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도쿄(東京) 분쿄(文京) 구의 8개 공립도서관은 2005년부터 담당 초등학교를 배정한 뒤 사서가 직접 학교를 방문해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 준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초등학생들의 독서활동에도 눈에 띄는 성과가 나타났다.

마이니치신문이 매년 5월 실시하는 학교 독서여론조사에서 초등학생 1명이 한 달간 읽은 책은 2005년 7.7권에서 지난해 9.7권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부성이 3년에 한 번씩 실시하는 사회교육조사에서도 초등학생이 전국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이 2001년 1인당 17.1권에서 2004년 18.7권으로 늘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신문왕국’ 일본 엿보니…

日국민 90%가 “신문 신뢰”

탄탄한 판매 수익 뒷받침

5일 오전 7시 50분 일본 도쿄(東京) 시내 요쓰야(四ツ谷) 역을 출발한 지하철 안. 100여 명의 승객 중 20여 명이 신문을 열심히 읽고 있었다. 90% 이상은 유력지인 니혼게이자이신문, 아사히, 요미우리신문 중 하나였다. 스포츠신문이나 무가지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인터넷과 영상매체의 발달 속에서도 변함없는 ‘신문왕국’인 일본의 아침 풍경이다. 일본에서 매일 발행되는 일간지는 전체 가구 수보다 많은 5231만 부, 이 중 절반 이상이 5대 일간지다.

● 2중 3중 확인 취재시스템… 독자신뢰 확고

요미우리신문이 매년 실시하는 매체조사에 따르면 TV 보도를 신뢰하는 일본인의 비율은 1993년 79%에 이르렀으나 1996년 이후에는 60%대에 머물러 왔다. 반면 신문은 1980년대 후반 이후 80%대 후반∼90%대 전반의 높은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세계적 홍보대행사 에델만이 지난해 8월 실시한 조사에서도 ‘신뢰할 만한 정보를 얻기 위해 첫 번째로 찾는 미디어’로 일본인은 61%가 신문을 꼽았다.

일본에서 ‘신문에 나왔다=사실’이라는 등식이 흔들리지 않는 이유는 주요 신문사들이 2중 3중으로 사실을 확인하는 취재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가 작성한 기사는 서브 캡틴→현장 데스크→내부 데스크→부장 등 4단계의 검증단계를 거쳐야 편집기자의 손에 넘어간다. 아사히신문의 경우 이 같은 치밀한 취재시스템을 가동하기 위해 거느린 편집국 인원이 무려 2500여 명.

이 신문의 기자들이 “기사 한 줄에 수십 만 엔”이라고 말할 정도로 값비싼 취재 시스템이다. 이런 구조가 유지될 수 있는 원인은 판매수입이 많기 때문이다.

일본 신문의 월 구독료는 아사히 요미우리 마이니치 등 3대지가 3925엔으로 미국보다 2배가량 비싸다. 그런데도 인구당 구독자 수가 세계 1위를 다툴 정도로 신문이 많이 팔린다.

일본 신문의 전체 수입에서 판매수입이 차지하는 비중은 50%가 넘는다. 미국이나 한국은 10, 20%대에 불과하다.

이 같은 일본에서 독특한 판매시장 구조가 오늘의 ‘신문왕국’을 만들었다는 분석에는 별 이견이 없다. 정부에서는 ‘특수지정제도’라는 공정거래법상 예외적인 제도를 만들어 현행 판매 구조를 뒷받침해 왔다.

그러나 과당경쟁과 강매 같은 부작용도 나왔다.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는 신문판매를 둘러싼 지나친 경쟁에 대한 비판론에 고무돼 칼을 빼들었다.

● 공정위 개입 ‘알권리 침해’ 여론 반발로 무산

2005년 11월 당시 공정위 사무총장은 특수지정제도를 바로잡겠다고 기자회견에서 선언했다. 신문업계는 특수지정제도를 폐지하면 가정배달제도의 뼈대가 흔들려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양측의 공방은 1년 이상 지속됐지만 일본 사회의 여론은 공정경쟁보다 알 권리 쪽을 선택했다.

2006년 2∼4월 실시된 여러 여론조사에서 70∼80%대의 일본 국민이 특수지정제도 존속을 희망했다. 가정배달제도가 유지돼야 한다는 사람은 10명 중 9명꼴이었다.

정치권에서도 신문업계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공정위는 지난해 6월 “결론을 유보하겠다”며 사실상 백기를 들었다.

도쿄=천광암 특파원 i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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