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너무 빨리 온 중년의 위기”

  • 입력 2007년 3월 28일 03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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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성장의 신화로 주목받았던 한국경제가 각종 악재로 때 이른 ‘중년의 위기(middle-age crisis)’에 빠졌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사진)가 27일 지적했다.

FT는 이 날짜 사설에서 “동아시아의 눈부신 경제성장이 한없이 이어질 것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은 한국 사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며 운을 뗐다. 사설은 이어 “급속한 산업화를 이뤄낸 아시아의 세 번째 경제대국이 이제는 때 이른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한국경제가 처한 상황을 냉정하게 평가했다.

이 신문은 △지난 4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4.2%로 잠재 성장률을 밑돌았고 △중국과 아시아의 다른 저임금 국가에 의해 산업기반이 급속히 잠식당하고 있으며 △기업들이 생산 기지를 해외로 속속 이전하는 점 등을 이 같은 판단의 근거로 들었다. 또 확산되는 ‘외국인 혐오증(xenophobia)’도 외국자본의 직접투자를 가로막고 있다고 설명했다.

FT는 “교육받은 인재와 근면한 노동력, 잘 갖춰진 인프라와 인터넷 망, 여러 분야에서 세계를 주도하는 기업들을 한국 경제가 여전히 자산으로 갖고 있다는 점에서 이 같은 위기는 놀라운 일”이라고 꼬집었다.

이 신문은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라고 질문한 뒤 “일본식 경제모델을 추구해 온 한국이 그 강점을 충분히 배우지 못한 상태에서 약점을 너무 많이 모방했다”는 것을 이유 중 하나로 들었다. 일부 업종에 편중된 제조업이 수출에 지나치게 의존해 온 점, 내수가 역동성을 잃고 각종 규제에 얽매여 있는 점도 지적됐다.

재벌기업들이 국내에서 다른 경쟁업체의 성장을 가로막으면서도 투자는 해외에 집중시키는 것도 문제점으로 꼽혔다. 중국의 급속한 경제성장도 이 같은 상황을 더욱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고 신문은 설명했다.

이 같은 현실을 감안할 때 한국경제가 성장하려면 대량생산 방식에서 손을 떼고 개방을 통한 사업 다각화와 기업혁신을 통해 중국이 따라올 수 없는 새로운 수익창출 활동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FT의 제언이다.

FT는 “유감스럽게도 노무현 정부는 역동적인 개혁을 추진할 비전과 정치적 용기가 모두 부족하다”며 “대선과 내년 총선이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이 신문은 “한국은 정치적 리더십이 제대로 발휘될 경우 성장의 기회를 잘 잡아낼 수 있음을 역사를 통해 보여준 바 있다”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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