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들의 영웅 한국인의 친구, 부디 다시 서길…”

  • 입력 2007년 3월 15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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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2월 초 백악관에서 열린 의원 초청 연말 연회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부부와 함께한 레인 에번스 의원(오른쪽)과 서옥자 교수. 두 사람은 2000년부터 이 연회에 매년 참석했다. 사진 제공 서옥자 교수
2005년 12월 초 백악관에서 열린 의원 초청 연말 연회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부부와 함께한 레인 에번스 의원(오른쪽)과 서옥자 교수. 두 사람은 2000년부터 이 연회에 매년 참석했다. 사진 제공 서옥자 교수
美의회 위안부 문제 이슈화 주역 에번스 前의원… 12년째 파킨슨병 고통

그의 이름 앞엔 '한국인의 친구'란 호칭이 늘 따라다녔다.

레인 에번스(55) 전 미국 연방 하원의원. 그는 미 의회에서 일본군위안부 강제 동원 문제를 이슈화한 주역이자 손꼽히는 '인권 정치인'이었다.

파킨슨병으로 지난해 말 은퇴하기까지 24년간 하원의원으로 일하면서 한결같이 한인을 비롯한 소수민족과 약자의 인권을 위하여 헌신해 온 그였다. 그럼에도 정작 자신은 병마(病魔)와 힘들게 싸우는 와중에도 주변 사람들까지 도와주느라 고통과 어려움을 겪어 왔다.

그는 군위안부 문제 활동가인 워싱턴 정신대대책위원회 서옥자 회장과 오랜 기간 우정을 나누며 인연을 이어 오다 결혼까지 약속한 사이다.

▽쓸쓸한 은퇴 후 생활=13일 미 의회 소식통들에 따르면 에번스 전 의원은 일리노이 주 몰린 시 요양자 마을의 방 2개짜리 타운홈(독립주택이 여러채 붙어 있는 주택형태)에 살고 있다. 남동생이 동거인으로 되어 있지만 실제로 돌봐 주는 사람은 주간에 방문하는 간병인밖에 없는 딱한 처지다.

그는 24년간 12선 의원을 지냈지만 워낙 청렴했던 탓에 모아 놓은 재산도 많지 않다. 현역시절 "특별대우가 싫다"며 의원에게 주어지는 연금 혜택까지 거부했을 정도다. 의회 사무국이 고민 끝에 2005년 "그래도 연금은 받아야 한다"고 결정해 그 뒤 2년간의 재임 기간에 대해서만 소액의 연금이 나올 뿐이다.

그렇지만 에번스 전 의원은 주변에서 도움을 청하면 힘에 부쳐도 거절할 줄 모르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였다. 특히 삼형제 중 둘째인 그에겐 오랫동안 경제적으로 기대 온 동생 가족이 있다. 지난해 초 건강이 극도로 악화돼 3월 재출마하지 않겠다고 밝힌 뒤 동생이 그의 법적대리인으로 등록했지만 법원은 6월 수석보좌관인 데니스 킹 씨로 법적대리인을 바꾸고 재산은 은행이 관리하라고 결정했다.

▽병과 애틋한 사랑=에번스 전 의원은 해병대 출신. 조지타운대 법과대학원을 졸업하고 아동과 빈민을 위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다 31세 때인 1982년 전통적 공화당 지역인 일리노이 주 제17 선거구에서 민주당 소속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며칠 밤을 새우며 일해도 끄떡없을 만큼 심신이 건강한 정치인이었던 그에게 1995년경 파킨슨병의 고통이 찾아왔다.

지난해 1월에는 국회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다가 응급실에 실려 갈 만큼 병환이 악화됐다. 워싱턴의 군병원에 3주간 입원한 뒤 퇴원한 그는 워싱턴 근교 메릴랜드 주의 서옥자 회장 집에서 6주 동안 지냈다. 서 회장과 에번스 전 의원은 2000년 정신대대책위원회 정기총회의 초청연사로 처음 만나 우정을 나눠 온 사이.

1987년 미국으로 와 사회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서 회장은 메릴랜드 주 워싱턴바이블칼리지에서 사회심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병원에 있을 때는 음식도 못 먹을 정도로 악화됐던 병세가 서 회장의 정성스러운 간호 덕분에 호전됐다. 층계를 혼자 오르내릴 정도가 되자 에번스 전 의원은 다시 일리노이 주로 돌아갔다.

지난해 여름 밤 12시가 지난 시간인데도 전화를 걸어와 "너무 힘들다"며 하소연하더라고 서 회장은 전했다. 며칠 뒤 일리노이 주로 가 보니 그는 다락방 카펫 위에서 지내고 있었다.

힘들고 고독하지만 그래도 밖에 나서면 그는 여전히 영웅이었다. 아픈 몸을 이끌고 행사장에 들를 때마다 지역구민들은 그의 손을 잡고 "우리는 당신을 사랑한다"며 은퇴를 안타까워했다.

외로운 투병생활에 지친 때문일까. 독신주의자이던 에번스 전 의원은 지난해 5월 역시 독신인 서 회장에게 청혼을 했다. 예상치 못한 청혼에 서 회장은 시간을 달라고 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진실로 신뢰하고 존경했지만 키스 한번 해 본 적 없는 사이라고 서 회장은 말했다. 굳이 두 사람의 관계에 이름을 붙이자면 정신적 사랑이나 동지애에 가까웠다는 설명이다.

그 뒤 몇 개월 동안 그의 투병생활을 지켜보던 서 회장은 '옆에서 돌봐 줄 사람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결국 10월 청혼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번엔 에번스 전 의원의 동생과 법적대리인인 킹 전 보좌관이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서 회장도 억울하게 '세속적 오해'를 사면서까지 결혼할 마음은 없었다. 외롭고 힘든 그의 투병생활이 너무 안쓰러울 뿐이었다.

"은퇴 소식을 듣고 찾아온 지인들이 감사와 작별인사를 전한 뒤 돌아가면 에번스 전 의원은 남몰래 눈물을 흘렸어요. 그러면서도 너무 아파 자다가 일어날 정도로 고통을 겪었지요."

지난해 말 의회가 폐회한 뒤 에번스 전 의원과 외부인의 연락은 힘들어졌다. 한국 정부가 수교훈장 광화장을 주려 했지만 법적대리인이 연결해 주지 않아 훈장을 건넬 수조차 없었다. 그를 위해 한국의 기(氣)치료 전문가 3명이 지난해 11월 자비를 들여 미국으로 갔지만 그냥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기자도 킹 전 보좌관과 몇 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끝내 답신이 없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에번스 전 의원은

1999년 의회 의사록에 처음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기록으로 남겼고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5차례 결의안을 발의했다. 그가 은퇴하자 절친한 동료인 일본계 마이크 혼다 의원이 “에번스의 횃불을 이어받겠다”며 올해 1월 31일 결의안을 다시 제출했다. 한국인에 대한 부당한 비자거부 개선 조치, 한국계 혼혈인 시민권 자동부여 법안 발의, 고엽제 피해자 배상, 대인지뢰 금지법안도 그가 주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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