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선종을 찾아서]<하>남화선사∼백림선사

  • 입력 2007년 3월 15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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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불(等身佛).’

중국 선(禪)맥을 중창한 6조 혜능(慧能) 선사의 진신상(眞身像)을 마주한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좌탈입망(坐脫立亡·앉은 채로 열반에 드는 해탈의 최고 경지)이다. 몸을 펴 봐야 150cm도 될까 말까 한 자그마한 체구, 10도 정도 앞으로 기울어진 얼굴, 꼭 다문 입술에 눈을 감고 있다. 그 표정 어디에서도 삶과 죽음의 경계는 없다. 속세의 번뇌, 육신의 고통의 흔적은 더더욱이나….

중국 남부의 광둥(廣東) 성 사오관(韶關) 인근의 남화선사(南華禪寺)에 모셔진 혜능 선사의 진신상은 중국 선의 원류를 좇는 이번 여행의 백미였다. 혜능 선사의 진신상 좌우로 단전(丹田) 화상과 감산(감山) 화상의 진신상이 나란히 모셔져 있다. 황메이(黃梅) 사조사에서 도신(道信) 선사의 등신불을 봤지만 그때는 별 감흥이 없었다. 진신상의 크기가 일반인에 비해 너무 큰 데다 금박을 입혀 등신불로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느낌이었다.

그런데 혜능 선사가 누구인가. 당시만 해도 오랑캐 지역 출신으로 5조 홍인(弘忍) 선사의 불목하니에서 수제자가 된, 그래서 남종선을 우뚝 세운 인물이다. 그와 관련된 유명한 선문답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어느 날 한 법사의 강론 도중 폭풍우가 일어 깃발(번·幡)이 펄럭였다. 법사가 대중에게 물었다. “바람이 움직이는가, 깃발이 움직이는가.” 그러자 대중 사이에서 ‘바람이다’ ‘깃발이다’ 다툼이 일었고 아무도 대답을 못 했다. 이때 행자 혜능이 “바람도 깃발도 아니요, 그대들의 마음이 움직이는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홍인의 법맥을 놓고 대사형격인 신수(神秀)와 벌인 게송(偈頌) 싸움도 선계(禪界)의 고전이다. 신수가 ‘몸은 보리수요/마음은 밝은 거울이다/때때로 털고 닦아/먼지가 끼지 않게 하라’고 쓰자 글을 몰랐던 행자 혜능은 다른 사람에게 대필을 부탁해 ‘몸은 보리수가 아니요/마음 거울도 경대가 아니다/본래 한 물건도 없거늘/어디에 먼지가 끼랴’라고 응수했다.

불교의 정수(精髓)인 ‘공(空)’의 원리를 단박에 깨친 혜능을 알아본 홍인 선사는 그를 자정에 동굴로 불러 법의(法衣)를 전달하고 다른 제자의 시기를 우려해 피신시켰다.

한국 조계종의 명칭은 혜능 선사가 법문을 했던 남화선사의 뒷산인 조계산에서 유래했다. 그만큼 동북아시아 선불교에서 혜능이 차지하는 위치는 독보적이다.

오후 예불 시간, 100여 명의 선승과 행자들이 주황색 가사를 걸치고 줄을 지어 대웅보전에 입장한다. 중국인 신도들도 자주 눈에 띈다. 향을 올리고, 부처님께 절하는 신도들의 표정에서 수차례의 법난(法難)과 사회주의·문화혁명의 소용돌이를 뚫고도 숨죽이며 전래되어 온 선맥을 느낄 수 있다.

4조 도신, 5조 홍인을 거쳐 6조 혜능에 이르러 절정에 이르렀던 중국 선은 조주 종심(趙州 從諶·778∼897), 임제 의현(臨濟 義玄·?∼867), 동산 양개(洞山 良价·807∼869) 등 탁월한 제자들에 의해 활짝 꽃을 피웠다.

특히 임제 선사는 혜능 선사의 남종선과 함께 한국 불교에 가장 깊은 영향을 준 임제종의 개조(開祖). 고려 말 승려 태고 보우(太古 普愚·1301∼1382)는 임제종의 법맥을 이 땅에 전파했다.

허베이(河北) 성 스자좡(石家莊)의 임제사는 임제 스님의 가사와 사리를 모신 33m 높이의 거대한 전탑이 주위를 압도한다. 그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조사(祖師)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고/아라한을 만나면 아라한을 죽여야/참사람이 된다’며 보이는 우상, 형상의 파괴와 견성(見性)을 통한 참자아의 깨달음을 파격적으로 강조했다. 임제사는 중국에서도 유명한 사찰로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이 재임 시 방문했던 사진도 걸려 있다.

임제사에서 차로 한 시간 거리인 자오(趙)에는 조주 선사가 40년간 주석했던 백림선사(栢林禪寺)가 있다. 중국 선종의 역사에서 가장 많은 화두를 남긴 것으로 유명한 조주 선사는 화두를 들어 깨치는 간화선(看話禪)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스님. 제자가 “조사(달마선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이냐”고 묻자 선사는 “뜰 앞의 잣나무니라(정전백수자·庭前柏樹子)”라는 화두를 던졌다. 하지만 실제 백림선사의 뜰에는 잣나무가 아닌 ‘측백나무’가 서 있었다.

중국 사찰의 대웅전 불상 배치는 어느 절을 가도 유사하다. 정면 불단에 3개의 대형 석가모니 좌불상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그 앞에 제자인 가섭과 아난이 서 있다. 대웅전 좌우측에는 18나한상이 있고, 후면 좌우에는 코끼리를 탄 문수보살, 사자를 탄 보현보살상이 서 있다. 불단의 뒷면에는 관세음보살상이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다.

정부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있지만 문화혁명 이후 30여 년간 줄기차게 진행돼 온 개혁개방의 여파로 중국 선은 부활의 시기를 맞고 있다.

광저우=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중국도 몇년내 선방 활성화될 것”

■ 사찰 탐방 해설 맡은 고우 스님

조계종 중앙신도회 산하 불교인재개발원이 주최한 중국 선종사찰 방문 프로그램인 ‘선의 원류를 찾아서’의 해설을 맡은 고우(古愚·사진) 스님은 여행을 마치며 “중국도 이제 몇 년 안 있어 선방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고우 스님은 “2조 혜가 스님을 통해 불안한 마음을, 3조 승찬 스님을 통해 죄의식을, 4조 도신 스님을 통해 구속감에서 벗어나는 법을 깨닫게 된다”며 “6조 혜능 스님에게서는 ‘지혜’를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혜능 스님의 ‘육조단경’은 일관되게 ‘지혜(반야·般若)로서 관조하라’고 가르친다”며 “지혜가 없는 보시는 선행일 뿐이며 지혜가 없을 경우 계율, 인욕, 정진도 모두 진정한 수행의 방편이 되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고우 스님은 “지혜는 구름이 걷혀 해가 비치는 것과 같으며, 그것은 무아(無我)를 통해 공(空)에 이를 때 찾아온다”고 덧붙였다.

광저우=윤영찬 기자 yyc1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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