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노사문화 현장을 가다]세계가 당신 일자리를 노린다

  • 입력 2007년 1월 29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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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 도시에 온 걸 환영합니다.” 미국 디트로이트 국제공항에서 도심으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운전사는 을씨년스러운 창밖 풍경을 내다보는 기자에게 이렇게 냉소적인 인사를 건넸다. 디트로이트를 찾은 이달 19일 고속도로변에는 한때 이 도시에 황금시대를 가져왔던 GM과 포드의 하청공장들이 여기저기 거대한 폐허로 남아 있었다. 디트로이트의 실업률은 미국 내 최고 수준인 7.8%. 인구는 5년 새 20만 명이 줄어 80만 명 남짓이다. 》

7일부터 21일까지 디트로이트의 코보 경기장에서 열린 디트로이트 모터쇼 전시장은 미국산 자동차의 현주소를 확인시켜 주었다. 전시된 자동차의 생산번호는 상당수 ‘2’ ‘3’ ‘K’로 시작됐다. 2는 캐나다산, 3은 멕시코산, K는 한국산이라는 뜻. 포드사가 올해 주력 상품으로 내놓은 차종인 ‘에지’는 캐나다 완성품이고, ‘퓨전’은 멕시코산이며, ‘머스탱 GT500’은 포드와 일본 마쓰다사가 50%씩 출자한 합작공장에서 만들어졌다. 미국 최대 모터쇼에서도 미국산 자동차는 설 땅이 없었다.

그러나 자동차 기업의 모습이 한결같은 것은 아니다.

지난해 12월 13일 독일 뮌헨 BMW 본사. 연구소나 대학 캠퍼스를 연상시키는 이 회사 본관 2층에서 노사 실무자들은 2005년 생산을 시작한 라이프치히 공장의 성과를 확인하고 있었다. 이 공장은 당초 사측이 체코에 지으려 했지만 노조가 근로시간 연장, 임금 하향 조정 등의 파격적인 타협안을 내놓아 독일에 짓게 만들었다.

다음 날인 12월 14일 자동차의 도시로 불리는 독일 볼프스부르크. 도시의 북쪽 절반을 차지한 폴크스바겐 공장의 4개 굴뚝에서는 이날도 흰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나치 시절 탱크를 만들 때부터 쓰던 이 굴뚝은 독일 제조업의 자존심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이 공장의 연기가 피어오르는 한 독일은 ‘조업 중’이다.

디트로이트와 뮌헨, 볼프스부르크.

세 곳 모두 세계화가 초래한 고용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노사의 대응에 따라 결과는 엇갈렸다. 회사의 이익을 위해 노사가 타협한 기업은 살아남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공장 폐쇄의 길을 걸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세계은행에 따르면 2006년 말 기준으로 중국과 인도가 세계 경제활동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3.5%로 1980년대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노동경제학자인 미국 하버드대 리처드 프리먼 교수는 2006년 발표한 ‘세계 노동시장의 도전’이라는 논문에서 “1990년부터 중국, 인도 등이 자본주의 질서에 편입되면서 세계 시장의 노동력 공급 규모가 10년 새 두 배로 커졌다”며 “이는 선진국 노동자들에게는 가공할 만한 공포”라고 지적했다. 기업이 값싼 노동력을 찾아 해외로 떠나면서 일자리 부족 현상이 더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2005년 세계 자동차 업체 중 상위 10개 기업의 해외 생산비중은 51.5%로 1996년에 비해 12.4%포인트 높아졌다.

포드는 지난해 사상 최대인 127억 달러의 적자를 내고 미국 내에서 4만4000명의 감원을 진행 중이다. 6만 명 감원과 12개 공장 폐쇄에 나선 GM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포드가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노동자 1인당 연평균 1만1400달러(약 1100만 원)에 이르는 건강보험료다. 정부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고용주가 근로자와 가족의 건강보험까지 책임져야 하는 미국의 시스템은 미국 기업들의 공장 해외 이전을 부추긴다.



“회사 이익이 먼저…” 노사 타협이 살 길

일자리 위기는 노사관계의 새로운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노조는 유연한 근로시간과 임금 인상 자제를 받아들이고, 기업은 고용안정을 통한 생산성 제고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일본 혼다자동차의 노조연합회 부회장인 나가사와 기미히코 씨는 “혼다자동차의 국제경쟁력을 고려해 임금을 결정한다”고 말했다.

혼다자동차는 2005년 매출 11조 엔의 사상 최고 실적을 기록했지만 월 기본급 500엔(약 4000원) 인상에 노사가 합의했다.

볼프스부르크의 폴크스바겐 조립공장에서 만난 노동자 헤르 마인홀트 씨는 “긴 시간 일하는 것을 좋아하는 노동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렇지만 일자리가 우선이기 때문에 우리도 2006년 9월 근로시간 연장 대신 고용보장을 약속받은 노사 합의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GM의 국제관계담당 직원인 마크 스트롤 씨는 “지금 사측이나 노조나 가장 큰 고민은 회사의 경쟁력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이다”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뮌헨·볼프스부르크·하노버(이상 독일), 파리(프랑스)

이은우 사회부 기자 libra@donga.com

△디트로이트·버펄로(이상 미국)

임우선 사회부 기자 imsun@donga.com

△사이타마·도쿄(이상 일본)

김광현 경제부 차장 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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