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할리우드 대사 바꿔치기’…“규제심해 엉뚱하게 번역”

  • 입력 2007년 1월 24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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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는 ‘젠장’인데 프랑스어로는 ‘사실이 아냐’라고?”

프랑스의 할리우드 외화 번역가들이 정부의 규제 때문에 대사가 엉뚱하게 번역되는 사례가 많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22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에 따르면 프랑스 TV에서는 저속한 표현이나 마약 혹은 술에 관한 말이 삭제된다. 미국과 달리 간접광고(PPL)도 규제해 ‘코카콜라’와 같은 특정 상호는 언급할 수 없다.

할리우드 영상물 수입이 급증해 작업량이 늘어나자 프랑스의 번역가와 더빙업자 200여 명은 최근 토론회를 갖고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했다.

이들이 제시한 예를 보면 “나는 샴페인을 숭배한다(I adore champa-gne!)”라는 배우의 격정적인 대사는 “또 마시고 싶다”는 밋밋한 표현으로 바뀌어 소개됐다. 범죄수사물 ‘CSI’에 나오는 “전기의자에서 그을려 죽을 것”이라는 생생한 대사도 “감옥에 갈 만하니까 가는 것”으로 완화됐다. 영어에서 흔히 ‘네 글자 말(four-letter word)’로 불리는 ‘fuck’ ‘shit’와 같은 욕설은 “그건 사실이 아니야”로 점잖지만 모호하게 바뀌었다.

마약이나 담배가 등장하면 번역가들은 더욱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의학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매일 담배를 피워 스트레스를 줄이라고 처방하는 대목은 ‘담배’라는 표현을 생략한 채 “밥공기에 (연기가) 찰 만큼만 피워라(puffing into a daily bowl of rice)”라는 애매한 표현으로 번역됐다. ‘코카인’은 ‘가루’로 표현해야 하며 ‘주사기’는 의사와 관련이 있을 경우에만 원문 그대로 쓸 수 있다. 이 신문은 프랑스에 TV의 표현 수위나 간접광고에 명백한 규정은 없지만 외국의 대중문화로부터 자국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적용해 온 오래된 관행이 이어지는 것이라고 전했다.

‘세서미 스트리트’ 등 10년간 외국 시리즈물을 번역해 온 바네사 베르트랑 씨는 “이는 단순히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의사소통의 문제”라며 “성문화된 규정이 아니기 때문에 불만을 제기해도 책임 있게 나서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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