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에 백기투항한 태국…국제신뢰 흔들

  • 입력 2006년 12월 20일 17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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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은 회복돼도 상처는 남는다.'

하루 만에 해프닝처럼 끝난 태국의 외국자본 규제 시도를 놓고 20일 외신과 금융전문가들의 신랄한 평가가 쏟아졌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의 악몽을 떠올리게 한 증시 동요가 가라앉으면서 비판의 칼날은 태국의 군부로 향하고 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지 두 달, 겉으로는 안정세를 찾는 듯했지만 이번 사건으로 결정적 미숙함을 드러냈다는 지적이다.

●투자 규제에 외국자금 '썰물'

사건의 발단은 18일 오후 태국 중앙은행의 갑작스런 규제 발표. 2만 달러 이상의 외국인 투자 자금(상품, 서비스 교역 관련 제외) 중 30%를 의무적으로 은행에 예치토록 하고 이를 1년 안에 빼 내가면 전체 투자금의 10%를 과징금으로 부과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최근 태국 바트화의 가치가 급상승하면서 환투기를 노린 해외자금이 금융시장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에서 나온 것. 이대로 놔두면 수출에도 큰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 나온 고육지책이었다.

그러나 발끈한 외국 투자자들이 우르르 자금을 빼내기 시작했다. 19일 태국 SET지수는 15% 하락해 16년 만에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다. 하루 손실 규모가 무려 7730억 바트(약 20조 원)나 됐다.

제2의 태국 발(發) 아시아 금융위기를 우려한 정부는 결국 하루만에 "주식투자 자금에는 규제를 적용하지 않겠다"며 물러섰다. 외국자본의 공격에 백기 투항한 셈이다.

●해외로부터 경고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군부 실정(失政)의 전초전 아니었느냐"는 의구심이 가시지 않는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자본시장을 억지로 규제하려는 무시무시한 정책이 태국 정부의 신뢰도와 국정운영 능력에 큰 상처를 남겼다"고 보도했다.

군부가 지난달 술 광고를 전면 금지하는가 하면 에이즈 치료제 공급비용을 낮추기 위해 미국 회사가 보유한 특허를 파기하면서 외국기업들의 불만도 높아진 상태.

투자은행 UBS의 조나단 앤더슨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이번 일은 권위주의적인 시장규제에 불안감을 높여 태국의 경제성장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외신들도 "태국이 아직도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의 교훈을 깨치지 못했다", "이론에만 의존하고 시장을 몰랐다"고 지적했다.

쿠데타로 축출된 탁신 친나왓 전 총리의 향수를 불러올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억만장자 사업가였던 탁신 전 총리는 경제에 영향을 미칠 규제정책에 신중했다는 평. 한 애널리스트는 "이번과 같은 시도는 전 정권에서는 절대로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은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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