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민주당 “세금 올려 분배강화” 포퓰리즘 회귀▼
미국 민주당이 11·7 중간선거로 의회를 장악하면서 당의 경제정책 모드도 기존의 ‘루비노믹스(Rubinomics)’에서 포퓰리즘으로 바뀌고 있다.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재무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루빈 씨티그룹 공동회장의 이름을 딴 루비노믹스의 핵심은 경제에서 시장 자율을 확대하고 무역자유화를 적극 지지한다는 점.
그런데 중간선거 이후 민주당 내에서 정부의 개입을 강화하고 무역자유화 정책을 재고해야 한다는 포퓰리즘이 세를 얻고 있다고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이코노미스트 등이 잇따라 보도하고 있다.
○ 과거로 회귀하는 민주당
클린턴 행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만 해도 민주당 정책의 기본 노선은 철저히 ‘친(親)노조, 반(反)기업’이었다. 그런데 클린턴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이 같은 공식은 깨졌다.
골드만삭스 회장 출신인 루빈 전 장관을 영입하면서 클린턴 대통령은 퍼주기식 복지정책의 전면 재검토,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타결, 재정적자 감축 등 옛날 민주당과는 다른 정책을 추진했다. 노조를 비롯해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층의 반대가 많았지만 루비노믹스는 1990년대 이후 높은 경제성장률과 낮은 실업률로 미 경제의 장기 호황을 이끄는 동력이 됐다.
그런데 중간선거가 끝난 뒤 민주당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다. 짐 웹(버지니아 주) 상원의원 당선자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계급 투쟁’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소득 격차가 점점 커지면서 미 사회가 ‘계급 사회’로 바뀌고 있다”며 기업경영자들의 고액 연봉을 강하게 비판했다.
하원 세입세출위원장 내정자인 찰스 랭걸 의원도 틈만 나면 “경제 성장의 혜택이 일반 근로자들에게도 균등하게 분배되도록 해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루비노믹스도 가난한 계층을 외면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루비노믹스 주창자들은 사회안전망을 통한 대책을 선호한다. 반면 포퓰리스트들은 양극화 해소방안으로 고소득층 세율 인상 같은 정부 규제 강화와 최저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다.
○ ‘모드 변화’의 배경과 영향
민주당 분위기가 이처럼 바뀐 것은 미 경제가 장기 호황을 누리는 동안 소득분배 구조가 실제로 크게 악화됐기 때문이다. 1990∼2004년 상위 1% 소득계층의 실질소득은 57% 증가했다. 그러나 나머지 90%에 해당하는 중간 및 하위 계층의 실질소득은 2% 증가에 그쳤다.
또 이번 중간선거에서 노조의 전폭적인 지원이 민주당의 압승을 도왔다는 점도 포퓰리스트들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유다. 미국 내 최대 노조상급단체인 미국노동총연맹산업별회의(AFL-CIO)는 오하이오 주 등 접전지역에서 대대적인 투표참여운동을 주도해 민주당 압승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으로선 노조의 목소리를 무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 포퓰리스트들이 주도권을 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의 주요 경제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데에는 일정 부분 한계가 있다. 의회 내에서 다수당이기는 하지만 압도적인 다수가 아니기 때문에 공화당과 협력하지 않고는 법안 처리가 쉽지 않다. 또 의회에서 통과된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포퓰리즘의 가장 큰 타깃은 무역정책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실제로 의회는 베트남 관련 무역법안을 보류하는 등 무역자유화에 대한 반감을 내비쳤다. 또 민주당 지도부는 이미 정부 간 합의를 이룬 페루 및 콜롬비아와의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행정부에 재협상을 촉구했다. 이 같은 보호주의 색채의 무역정책은 AFL-CIO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다.
○ 한미 FTA는 어떻게 되나
결론적으로 밝지 않다. 이번 선거로 민주당 내 지분이 커진 AFL-CIO는 이미 시애틀에서 열린 한미 FTA 3차 협상 때 한국 노동단체들과 함께 반대 시위를 벌인 바 있다. 이에 따라 한미 FTA는 설령 정부 간 협상이 당초 예상대로 내년 초 타결돼도 의회 비준을 받기 위해서는 많은 난관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중국, 경제 국수주의 U턴?▼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