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하원의장이라고 패션 따지나”

  • 입력 2006년 11월 20일 03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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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미국 중간선거 이후 워싱턴 정치 기사의 최고 관심대상은 단연 낸시 펠로시(사진) 하원의장 내정자다. 그의 진보철학 중도정책은 물론 패션 감각까지 크고 작은 사안이 비중 있게 지면에 소개되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18일 독자편지란 4분의 1가량을 할애해 ‘펠로시의 패션 감각’을 다룬 기사에 항의하는 독자들의 분노를 전했다.

“여자 정치인이라고 이런 식으로 다뤄도 되느냐. 선출된 정치인은 합당하게 다뤄라”거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 내정자의 패션 감각 기사는 언제 나오냐”는 비난 일색이었다. 정치 1번지의 신문인 워싱턴포스트가 남성이 지배해 온 정치문화를 벗어나지 못한 채 ‘여성=패션’이라는 통념으로 기사를 작성한 타성을 꼬집은 글들이었다.

이 신문은 1주 전 ‘성조기 앞에 선 아르마니 정장의 하원의장’ 기사를 패션 면에 썼다. 의사당에서 이라크전쟁 정책의 장래를 놓고 기자회견에 나선 그를 묘사했다. ‘조용한 권위가 차분하게 드러났다: 하원의장에 걸맞다’는 제목이 붙은, 대체로 긍정적인 내용이었다.

“조르조 아르마니 정장을 잘 차려 입었다. …카메라 앞에서 빛났고, 패션 감각이 돋보였다. …색상이 조화를 이룬 (알 굵은) 목걸이를 둘렀다. 스타일리시하다. 샤넬, 세인트존스를 입을 수도 있겠지만 그는 아르마니를 선택했다. 남들의 옷맵시 평가나 스스로 느끼는 자신감에 비춰볼 때 외모에 대한 승리감이 드러난다. 아르마니 정장은 프로페셔널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도 선거 직후 기자회견에서 펠로시 내정자를 ‘여성 정치인’으로 상대한 듯한 발언을 해 구설에 오른 적이 있다. 그는 “공화당 계열의 잘 아는 커튼가게 주인을 소개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은 백악관이나 의회에서 대통령이나 다수당이 새로 등장하면 커튼과 소파의 천갈이를 해 온 관행과 여성이라는 점을 결부시킨 발언이었다.

아무래도 당분간 워싱턴에서는 여성 하원의장의 급부상을 의식한 ‘정치적으로 올바른’ 어휘 선택이 필수조건이 될 것 같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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