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현직-차기 하원의장 지역구 비교해보니…

  • 입력 2006년 11월 14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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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의회에서 다수당은 모든 것을 의미한다. 건국 당시 하원을 중심으로 국가운영을 디자인했던 미국의 정치시스템에서 하원 다수당의 힘은 절대적이다. 의회권력이 교체되면 모든 것이 바뀐다. 의회 식당 메뉴까지 바꿀 수 있다.’(김윤재 미국변호사·코리아연구원에 기고한 ‘공화당 장기집권의 좌절과 민주당 의회의 전망’ 중에서)

7일 치러진 중간선거로 미국의 의회권력은 공화당에서 민주당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단순히 여소야대의 재등장으로만 볼 게 아니다. 한 차례 선거 결과만으로 재단하긴 어렵겠지만, ‘권력의 지정학적·사회문화적 충돌’로 보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하원 다수당의 수장인 하원의장 교체도 그런 프리즘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민주 공화 양당의 간판이라고 할 수 있는 데니스 해스터트(64·공화) 현 하원의장과 낸시 펠로시(66·민주) 차기 의장의 지역구를 대비하면 권력의 변천은 물론 미국의 다면성을 엿볼 수 있다.

○ 스타일부터 다르다

해스터트 의장은 ‘평균 미국인’에 가깝다. 지역구의 한 고교에서 16년간 사회교사 겸 레슬링 코치를 맡았고, 그의 부인도 같은 학교 체육교사였다. 뚱뚱한 체형에 농장 일, 골동품, 자동차를 좋아하는 그는 일리노이 주 농촌지역의 평균치를 옮겨 놓은 것 같다. “다수 그룹의 다수설을 만족시킨다”는 그의 정치신념 역시 ‘보통 사람’의 뜻을 따르겠다는 이미지 그대로다.

반면 내년 1월 하원의장에 취임할 펠로시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는 진보 도시 샌프란시스코에서 20년간 하원의원을 지냈다. 가냘픈 몸매의 그는 하원의원이던 아버지를 따라 수도 워싱턴에서 성장했고, 남편 역시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백만장자다. 몇 차례의 성형수술 이력도 지역구에선 관심거리가 아니다.

○ 도시 생김새도 다르다

“샌프란시스코에 내 마음을 두고 떠났다(I've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는 노랫말처럼 샌프란시스코는 낭만적이다. 단골 영화촬영지이자, 관광객이 넘쳐 나는 곳이다. 쭉쭉 뻗은 고층 빌딩, 미국 최대의 차이나타운, 안개 속 금문교…. 아름다운 도시 외관을 자랑하지만, 언제부턴가 ‘멈춰 선 도시’가 됐다. 진보파 민주당원과 녹색당 환경론자가 시 의회를 지배하고 있어 개발 계획은 말도 꺼내기 어렵다. 녹색당과 진보 자유당 같은 군소정당의 지지율(9.1%)이 공화당 지지율(10% 선)에 육박할 정도다.

반면 해스터트 의장의 지역구는 ‘공사 중’이다. 미국의 교외지역이 그렇듯 대도시 거주자들이 ‘새로 지은 큰 집’을 찾아 도시를 떠나면서 생긴 현상이다. 고층 건물은 찾아볼 수 없다. 백인 비율이 83%. 비슷비슷한 중산층이 몰려 산다. 백만장자도 섞여 있지만, 값비싼 사립학교보다는 ‘남들 다 다니는’ 공립학교를 선호한다.

○ 가족·종교 개념이 다르다

샌프란시스코에선 “아이들보다 강아지가 더 많다”는 말이 회자된다. 미혼 전문직 종사자와 독신 노인들이 많고, 취학 연령의 자녀를 둔 부모가 공교육 붕괴로 도시를 등지는 현상을 빗댄 농담이다.

2003년 말 주간 이코노미스트는 “거주 인구의 70%가 독신”이라는 통계를 제시했다. “결혼한 적 없다”는 거주자가 무려 46%에 이른다. 미국 인구통계국의 2005년 조사에 따르면 주택 소유자 비율이 33%에 그칠 정도로 장기 거주자 비중이 낮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는 ‘진보=덜 기독교적’이란 공식이 성립한다. 샌프란시스코에선 독점적 종교가 없다. 기독교 이외에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는 물론 사교(邪敎)도 간판을 내건다.

해스터트 의장의 지역구는 ‘가족 타운’이다. ‘18세 이하’의 비중도 29%로 샌프란시스코(14%)의 2배를 넘는다. 자기 집 소유 비율은 76%. 아이들을 키우면서 오래 살겠다는 뜻이다.

○ ‘캘리포니아 밸류’ 논쟁

샌프란시스코는 1960, 70년대 베트남전쟁 반대 시위와 함께 시작된 히피문화의 본산지다. 그때 형성된 진보의식은 동성애 지지, 이라크전쟁 반대 등 각종 시위문화의 출발점으로 이어졌다. 진보적 대학 중 하나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가 30분 거리에 있다. 해스터트 의장의 고향에선 이런 샌프란시스코를 “미국이 아니라 유럽에 더 가깝다”고 평한다. 미제 승용차보다는 스웨덴 차가 잘 팔리고, 숭늉 같은 아메리칸 커피보다 에스프레소나 라테 같은 유럽풍의 커피가 잘 팔리며, 스테이크보다 생선 초밥을 더 즐긴다는 것이다.

공화당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펠로시 하원의장이 탄생하면 샌프란시스코의 정치 문화가 미국을 오염시킨다”는 이른바 ‘캘리포니아 밸류(California Value) 경계론’을 내세우며 공세를 퍼붓기도 했다. 하지만 잘 먹히지 않았다.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저서 ‘보보스’에서 미국의 두 얼굴을 이렇게 썼다. “샌프란시스코로 대표되는 돈 많고(부르주아) 예술의식 강한(보헤미안) 지역에 대한 ‘보통 미국인’의 복잡한 심경은 미국 정치가 안고 있는 숙제다.”

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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