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김승련]美대선 ‘일단 이기고 보자’의 후유증

  • 입력 2006년 6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의 ‘해밀턴 프로젝트’에 관심을 보인 뒤 “미국도 국가경영철학을 외국에서 벤치마킹하느냐”는 독자의 질문이 있었다. 과문한 탓에 100% 확신할 수는 없지만, 미국이 근년 들어 프랑스식 노조모델, 영국식 사회보장제도를 통째로 따와서 연구했다는 소리는 들어 보지 못했다.

굳이 따지자면 21세기 미국은 200년 전 ‘조상님들’의 철학과 식견에서 문제의 해법을 찾으려 하고 있다. 독립전쟁의 영웅 조지 워싱턴, 자유주의 이념을 설파한 토머스 제퍼슨, 미국 경제의 초석을 다진 알렉산더 해밀턴, 과학적 재능과 인문적 지성을 겸비한 벤저민 프랭클린이 단골이다.

TV 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한 정치인과 논객들은 “토머스 제퍼슨이 독립선언서를 작성할 때 그런 뜻으로 쓴 게 아니었다”고 말한다. 심지어 앤터닌 스캘리아 연방대법관은 “헌법을 기초한 선조들의 원래 취지는 그게 아니었다”고 공개발언을 할 정도다.

오죽했으면 올해 초 ‘건국의 아버지들이라면 (낙태 동성애 사회보장 총기규제 문제를) 어떻게 다뤘을까’라는 책까지 출판됐을까(역사가인 저자는 이런저런 설명은 늘어놓지만 시원한 답은 내놓지 못했다).

이런 현상은 내 논리만 갖고는 상대방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미국 주류사회에서 신성불가침의 영역에 서 있는 건국의 아버지를 인용하는 사람을 반격하기란 쉽지 않다. 논객 스스로 논리적 완결성을 의심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지난 십수 년 사이에 미국 정치판에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마음을 열고 경청하는, 그래서 때로는 설득도 당하는 미덕이 사라져 버린 탓이다.

왜 이 지경이 됐을까. 2000년 이후 2차례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승자와 패자 모두 보수, 진보 색채를 뚜렷하게 낸 것이 중요한 원인인 것 같다. 워낙 선거가 박빙 승부다 보니 ‘당선 후 집권기에 무슨 일이 벌어질망정 일단 이기고 보자’는 전략이 지배했었다.

상대 후보, 상대 측 국정철학을 철저하게 ‘몹쓸 것’으로 묘사했다. 그래야 자기 지지층이 움직인다고 믿었던 것이다. 정치 TV 광고가 그 주범이다.

그 참혹한 결과는 지난 5년간 이어진 조지 W 부시 대통령 분투기가 잘 말해 준다. 부시 대통령은 당선 이후 내내 야당인 민주당, 뉴욕타임스 CNN 등의 자유주의적(리버럴) 뉴스매체와 끝없이 싸웠다. 미국 뉴스도 결국 사람이 만드는 탓에 부시 대통령은 억울한 비판도 받았던 것 같다. 한 대 맞을 매를 두 대, 세 대 맞는 일도 생겼다. 30%대의 낮은 지지도는 그런 결과일 수도 있다.

2004년 대선에서 존 케리 민주당 후보가 이겼다 해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워싱턴에서 만나는 의회인사들에게 물어보면 그런 취지의 대답이 많았다.

그래서 블로거 사이에선 “선거운동(campaign)에 이기면 뭐 하는가. 정작 통치(govern) 단계에선 바닥을 기고 있는데…”라는 자성론이 등장했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임기 내내 바닥을 헤매게 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다행스러운 소식은 2008년 대선 후보군 가운데 중도적이거나(존 매케인 상원의원·공화), 중도적으로 보이려고 노력하는(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민주) 사람이 주목받고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는 후보자의 철학, 공약이 어느 때보다 ‘덜’ 중요하게 다뤄질지 모르겠다. 선거과정에서 반대세력을 싸잡아 매도하지 않고, 당선 후 철학이 다른 사람을 끌어안을 수 있는 후보의 풍모가 확인된다면 최소한 ‘당선=통치 실패’라는 공식은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김승련 워싱턴 특파원 sr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