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디자인 세계는 지금]<3>홍콩 ‘경제 믿고 맡긴다’

  • 입력 2006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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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북부 금융 중심가인 센트럴에는 세계적인 금융회사의 고층 건물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다. 홍콩 명물인 2층 전차가 센트럴을 가로지르고 있다. 홍콩=김상훈 기자
홍콩 북부 금융 중심가인 센트럴에는 세계적인 금융회사의 고층 건물들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 있다. 홍콩 명물인 2층 전차가 센트럴을 가로지르고 있다. 홍콩=김상훈 기자
홍콩 북동부 시내를 가로질러 달리는 2층 전차.

허름한 반팔 티셔츠 차림의 40대 여성, 머리에 기름을 발라 뒤로 넘긴 정장 신사 등 다양한 사람들이 전차를 꽉 채웠다. 이들이 찾는 곳은 해피밸리 경마장. 매주 수요일 오후면 6만여 명이 모여든다.

홍콩은 ‘도박의 도시’다. 홍콩인은 한국의 로또에 해당하는 ‘류허차이(六合彩)’ 얘기로 일주일을 보내고, 밥 먹을 때조차 식당에 따로 준비된 ‘마작실’에서 마작을 즐긴다.

이런 홍콩인의 성향은 투자에도 반영됐다. 이들은 주식을 일확천금의 수단으로, 부동산 투자를 ‘오래 버티기만 하면’ 이기는 도박 게임으로 생각했다.

그런 홍콩이 최근 변하고 있다.

경마 다음 날. 홍콩 일간지 ‘스탠더드’ 1면에 실린 것은 경마 소식이 아닌 HSBC의 주가 소식이었다. 최근 3년간 HSBC 주가가 꾸준히 올라 장기 투자자들이 안정적인 수익을 얻었으며, 연금관리공단도 이 주식에 투자하기 시작했다는 것.

단기투자로 ‘대박’을 노리던 홍콩인이 퇴직 이후를 생각해 장기투자로 돌아섰다.

○경제는 성장하리라 믿는다

리디아 라우(37·여) 씨는 1991년 홍콩을 떠났다. ‘사회주의 중국’에 반환되는 홍콩의 미래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미국 텍사스로 건너가 대학을 다시 다녔고 직장도 잡았다. 하지만 1999년 홍콩으로 돌아와 외국계 회사에 취직했다.

라우 씨는 홍콩을 ‘재발견’했다. 중국의 홍콩은 영국의 홍콩보다 못할 게 없었다. 중국은 ‘세계 경제의 심장’이 됐고, 홍콩은 중국이 만든 제품과 중국인 관광객을 흡수할 수 있었다.

2001년부터 라우 씨는 수입의 절반을 HSBC를 비롯한 우량주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5년 동안 한 번도 주식을 팔지 않았다.

그는 “값이 더 오른다면 한 번쯤 주식을 팔고 다른 주식을 살 수 있겠지만 은퇴 후 아파트를 살 때까지 우량주를 장기 보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중국이 성장을 멈추지 않는 한 홍콩도 중국과 함께 계속 성장한다. 나는 홍콩 경제를 신뢰하기 때문에 홍콩 기업에 투자한다.”

많은 홍콩인이 라우 씨처럼 홍콩 경제에 대한 신뢰로 장기투자를 하고 있다.

○투자의 폭이 넓어졌다

홍콩에서 장기투자자가 늘어난 것은 다양한 간접투자 상품이 등장한 덕분이기도 하다. 오로지 부동산과 은행 예금만 바라보던 홍콩인에게 주식, 채권, 외환, 파생상품 등에 투자하는 펀드가 대안으로 떠오른 것.

부동산 가격 폭락도 한몫했다. 1997년 홍콩을 반환받은 중국 정부는 인위적으로 주택건설용 토지를 공급했다. 사회주의식 주거정책을 편 것. 하지만 홍콩은 그해 말 아시아 전역을 휩쓴 금융위기를 겪었고, 결국 부동산시장은 얼어붙었다.

스탠다드차타드은행 홍콩지사의 신디 푸 투자담당 이사는 “1997년 무조건 안전하다고 여겼던 부동산시장이 폭락하자 홍콩 금융회사들은 처음으로 고객들에게 투자를 분산하는 자산 관리 개념을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피델리티 홍콩지사의 에릭 푸 이사는 “홍콩인은 20년 동안 한 종목, 한 업종에 투자하다 실패하는 경험을 반복한 뒤 이런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않는 지혜를 배웠다”고 말했다.

○투자 확대 계기는 연금

홍콩에서는 2000년부터 의무준비펀드(MPF)가 도입됐다.

MPF는 회사와 직원이 매월 같은 금액을 금융회사에 적립하는 제도로 한국이 최근 도입한 확정기여형 퇴직연금제와 비슷하다. 회사가 금융회사를 선택하면 직원은 이 금융회사의 투자 상품 가운데 원하는 펀드를 고른다.

직장을 옮기면 새 직장과 계약한 금융회사에서 다시 투자 상품을 선택하면 된다. 이런 불편함이 역설적으로 홍콩인에게 투자 마인드를 갖게 하는 계기가 됐다. 홍콩 경제활동인구 대부분이 반강제적으로 ‘골치 아픈’ 투자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연금제도의 모태는 미국의 ‘401K’ 제도. 1978년에 도입됐으며 세제 혜택을 준 1982년부터 확산됐다.

프랭클린템플턴 스티븐 도버 해외부문 최고투자책임자(CIO)는 “401K로 인해 미국인들은 미국 주식만 아니라 유럽, 신흥시장 등에도 투자하게 됐다”며 “이런 투자가 장기투자의 바탕이 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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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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