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위크엔드]카페문화 안방으로…

  • 입력 2006년 5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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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여성이 파리 오페라 인근 네소프레소 부티크에서 에스프레소를 뽑고 있다. 프랑스에선 전통적인 카페 문화가 ‘셀프 문화’로 확산되고 있다. 파리=김현진 사외 기자
프랑스 여성이 파리 오페라 인근 네소프레소 부티크에서 에스프레소를 뽑고 있다. 프랑스에선 전통적인 카페 문화가 ‘셀프 문화’로 확산되고 있다. 파리=김현진 사외 기자
운동으로 다져진 단단한 몸매의 할리우드 배우 조지 클루니. 네스프레소 카페 부티크에 들어가 직원과 눈인사를 나눈 뒤 커피 기기에 들어갈 캡슐을 골라 넣는다.

그의 어깨 너머로 커피를 마시고 있는 두 여성. 매력적인 입술 사이로 “정말 풍부해” “관능적인걸” “강하잖아” “특별하군” 등 감탄사가 흘러 나온다. 클루니를 가리키는 말일까?

클루니가 그들에게 다가간다. 그러나 그들은 “네스프레소, 말씀하시는거죠? 또 뭐가 있겠어요?”라며 황당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클루니는 아쉬운 눈빛을 하며 광고 카피를 그대로 읊는다. “네스프레소, 또 다른 게 뭐 있겠어?(Nespresso, what else?).”

스위스 네슬레의 에스프레소 기기 ‘네스프레소’ CF다. 프라임 시간대에 방영되는 이 광고는 프랑스 식음료 광고로는 드물게 글로벌 스타가 등장했다.

이 광고가 화제를 낳자 전자회사 필립스와 커피 회사 두에 에그베르가 합작해 만든 커피포트 브랜드 ‘센세오’가 코믹 콘셉트의 CF를 내놓았다. 준수한 외모의 남성이 사무실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보고 3명의 여직원이 흠모의 시선을 보낸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들이켜려고 고개를 젖히는 남성. 안타깝게도 가발이 떨어져 빛나는 머리가 그대로 드러난다. 세 미녀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을 만큼 커피 맛이 매력적이라는 광고의 메시지.

이처럼 커피 기기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관심은 상업적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다. 프랑스에선 ‘커피’라는 단어에 문화적인 의미가 얽혀 있다. 프랑스인들은 커피 한 잔을 제대로 마시기 위해 카페를 찾고, 손바닥만 한 에스프레소 잔을 두고 몇 시간씩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커피 기기가 인기가 있다고 해서 아직 카페 문화가 크게 바뀌지는 않았으나 수년 전부터 카페 문화가 집안으로 파고들어 셀프 문화로 확산되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인 도로시 클로저 씨는 “에스프레소 기기와 그에 맞는 캡슐이나 작은 패드를 사는 게 패션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한다.

네스프레소와 센세오는 커피 분말이 들어 있는 작은 캡슐과 얇은 패드를 판매하면서 큰 수익을 올리고 있다. 네스프레소는 특히 리미티드 에디션이나 고급 패키지 등 명품 브랜드의 마케팅 기법을 벤치마킹해 성공 사례로 손꼽히고 있다.

모 광고회사의 마셀 귀삿 사장은 “다양한 색상의 커피 캡슐은 에르메스의 켈리백처럼 이 브랜드의 아이콘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식품업계가 럭셔리 콘셉트를 도입하고 마니아를 갖는 것은 보기 드문 사례”라고 말한다.

네스프레소는 최근 고급 자동차 브랜드인 렉서스의 쇼룸에 에스프레소 기기를 설치하는가 하면 몽블랑 프라다 등 명품 브랜드 및 고급 스파와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이미지를 높이고 있다.

프랑스 경제지 레제코는 최근 “럭셔리 콘셉트 덕분에 네스프레소의 올해 세계 매출액이 이미 10억 스위스 프랑(약 7866억 원)을 넘어섰다”고 전했다. 지난해 매출액 8억1900만 스위스 프랑(약 6442억 원)이나 2003년 매출액 2억9800만 스위스 프랑(약 2344억 원)을 크게 웃돈다.

네스프레소가 집에서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기기와 그에 들어가는 여러 향의 캡슐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년 전이지만 상용화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프랑스에서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카페 문화를 파고 든다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네스프레소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에 부티크를 만들고 고객들이 직접 커피를 뽑아 먹을 수 있는 작은 카페를 설치했다. 소비자들이 익숙한 카페 문화를 통해 새로운 기기와 사용법을 익히게 한 전략이다.

이 전략은 현대적인 세련미를 추구하는 젊은이들을 매료시켰다. 부티크는 주말마다 장사진을 이룬다. 대학원생 제롬 지로동 씨는 “이곳은 젊은이들 사이에 ‘쿨’한 장소로 받아들여진다”고 말한다.

센세오는 에스프레소 콘셉트를 내세우지만 엄밀히 말하면 얇은 패드 속에 든 커피 가루를 뜨거운 물로 걸러 먹는 필터 커피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향의 종류가 다양하고 깊어 진짜 에스프레소 커피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프랑스 가전제조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가정용 에스프레소 기기 판매는 전년도에 비해 30% 늘어났다. 그 이유는 카페에서 오랫동안 커피를 즐길 만한 여유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또 카페의 일률적인 맛보다 각자의 입에 맞는 향과 품종을 선택하려는 개인화 트렌드도 반영됐다는 설명도 있다.

소설가 미카엘 커닝햄 씨는 이렇게 말한다. “에스프레소는 내 삶의 아드레날린이요, 일종의 마약이다. (가정용 기기는) 스스로 투입약의 종류와 양을 조절할 수 있어 좋다. 스스로 프로페셔널이라고 느끼게 하는 쾌감이 있다.”

김현진 사외기자 kimhyunjin517@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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