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바나시-아브라모위츠 대담]동북아 갈등 어떻게 풀까

  • 입력 2006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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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나바시 요이치 아사히신문 대기자(왼쪽)와 모트 아브라모위츠 센추리 재단 고문. 두 사람의 대담은 3일 오후 미국 워싱턴 시내 센추리 재단에서 진행됐다. 김승련 특파원
후나바시 요이치 아사히신문 대기자(왼쪽)와 모트 아브라모위츠 센추리 재단 고문. 두 사람의 대담은 3일 오후 미국 워싱턴 시내 센추리 재단에서 진행됐다. 김승련 특파원
일본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 문제와 최근의 동해 사태로 동북아 정세가 그 어느 때보다 어수선하다. 게다가 미국과 일본이 1일 주일미군 재배치에 관한 로드맵을 확정하고 양국의 군사동맹관계를 한층 더 ‘일체화’하자 중국은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일각에서는 미일을 축으로 한 해양세력과 중국 러시아의 대륙세력 사이에 새로운 긴장선이 조성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마저 제기하고 있다.

최근 스티븐 보즈워스 전 주한 미국대사와 함께 ‘태양을 쫓아서-동아시아 정책의 재고’를 펴낸 모트 아브라모위츠 미국 센추리 재단 고문과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초빙학자로 워싱턴에 와 있는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아사히신문 대기자에게 동북아 정세의 변화 가능성과 미국의 역할을 물어봤다.

▽사회=동아시아 민족주의가 21세기 벽두부터 지역 안정에 새로운 변수로 등장했다.

▽후나바시=민족주의의 확산 현상은 큰 걱정거리다. 한국의 민족주의는 민주주의와 동시에 진행됐다. 19세기 말 독일 일본 이탈리아가 그랬다. 사실 새로울 게 없다. 그러나 한중일 3국의 여론이 모두 민족주의에 휘둘리면 상황이 어렵다. 동아시아는 의미 있는 지역 협력체가 구축돼 있지 않다. 상호 간에 대화의 틀을 만들어 본 경험이 없다. 21세기 들어 한중일 3국은 모두 뻗어나가는 흐름을 타고 있다. 지금 시점의 민족주의는 새로운 도전이자 위험 신호다. 3국의 정치 리더십이 탄탄하지 못한 것도 상황을 어렵게 만든다.

▽아브라모위츠=동북아 3국의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고 할지라도 민족주의적 정서 자체가 호전적 행동으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 물론 한일 간엔 독도, 중-일 간엔 동중국해 분쟁 같은 영토 문제가 있다. 하지만 한국이 독도를 통제하지 못할 상황이 오겠는가. 아닐 것이다. 정치 지도자가 어떻게든 사태를 진정시켜야 한다. 3국 간 증오와 반목이 민족주의 요소를 부각시키고 있지만 ‘황금 알을 낳는 거위’라는 동북아 경제시장의 틀을 깰 정도는 아니다.

▽후나바시=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는 대외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었다. 일본은 스스로 주변국에 대한 정책의 선택지를 줄여버렸다.

▽사회=동아시아 역사 문제에서 미국의 역할은 무엇인가.

▽아브라모위츠=미국도 민족주의 때문에 중-일 관계가 나빠지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 또 한국 내 민족주의 기류도 부담스러워 한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미국이 개입해 악화시킬 필요는 없다. 그러나 중-일 갈등은 풀어야 한다’고 볼 것이다. 최근에 펴낸 내 책에서 나는 미일중 3국 정상회담을 제안했다. 다수의 미국인은 중-일 갈등 상황을 미일 동맹 강화로 중국에 맞서야 하는 기회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

▽후나바시=그 제안은 이론상 좋지만 부시 대통령이 3자회담을 주도할 것 같지 않다. 난 한일 양국 모두에서 ‘미국 의존증’을 본다. 고이즈미 총리와 지지 세력은 현재 강화된 미일 동맹 때문에 우쭐해 있다. 한층 강화된 미일 동맹이 중국에 미칠 정치적 영향에 신경 쓰지 않는 탓이다. 이들은 ‘결국엔 미국이 우리를 구해 낼 것’이라고 믿는다. 서울의 정치인들도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두 나라는 미국과만 전략 대화를 하자고 한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운명을 스스로 구상하는 노력은 없었다. 한일 모두 미국으로부터의 (심리적) 자율성이 요청된다.

▽사회=미국은 일본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 하고, 중국은 아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막으려 한다. 동아시아에서 두 흐름의 충돌이 생길까.

▽아브라모위츠=중국이 미국을 밀어낼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한일 양국은 미국과 2020년을 내다볼 전략 대화를 해야 한다. 향후 동아시아는 경제적 통합이 정치적 통합으로 이어질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큰 기회가 온 것이다. 진지한 지도력을 발휘할 장이 마련됐다.

▽후나바시=나는 중국의 지도력에 회의적이다. 중국엔 아무런 소프트파워가 없다. 오히려 한국과 일본이 동아시아 미래의 틀을 짜는 지도적 역할을 할 수 있다.

▽사회=북한 문제가 한미 간 갈등을 부르고 동아시아 질서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아브라모위츠=최근 한미 동맹이 느슨해졌다. 북한을 보는 눈이 달라서다. 양국 정부가 아무리 외교적 수사로 포장해도 다 알려져 있다. 부시 행정부의 대(對)북한정책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대북정책은 한국과 중국이 다른 생각을 갖고 있으면 현실화하기 어렵다. 북한 정권을 뒤엎겠다고 나설 순 없다. 그러나 때로는 압력도 필요하다. 미국이 압력을 넣어야 할 때지만, 한국 정부는 북한에 돈을 주려고 한다.

▽후나바시=한국 정치인에게 핵무장한 북한이 장차 통일 과정에 얼마나 버거운 상대가 될 것인지를 헤아려 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그리고 한국이 말한 균형자론 역할을 하려면 미국과 동맹을 탄탄히 맺는 것이 최선의 길이다.

대승적 차원에서 미일 동맹의 속도 조절(moderation)이 필요하다고 본다. 가령 어떤 이유로 한미 동맹이 깨진다고 보자. 그러면 미일 동맹이 전면에 나서게 된다. 모두에 안 좋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후나바시 요이치

-아사히신문 대기자(현)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초빙학자(현)

-아사히신문 베이징·워싱턴 특파원,워싱턴 총국장

-게이오대 법학박사

-‘동맹표류(同盟漂流)’ 등 저서 10권

▽모트 아브라모위츠

-센추리 재단 고문(현)

-국무부 정보·연구담당 차관보

(조지 부시 전 대통령 시절)

-카네기평화재단 회장

-올 4월 ‘태양을 쫓아서-동아시아 정책의 재고’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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