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기자 테헤란 르포]‘핵’ 풍전야 이란을 가다

  • 입력 2006년 5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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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 문제를 둘러싸고 이란과 서방의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다. 영국과 프랑스가 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이란 핵 제재 결의안을 제출했고 미국의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가 걸프 만으로 발진했다. 이에 맞선 이란의 대응도 점점 강경해지고 있다. 세계의 눈과 귀가 쏠린 이란의 심장부 테헤란을 찾았다.

3일 오후(현지 시간) 테헤란 도심의 바자(시장). 많은 사람으로 북적댔다. 이란 경제의 3분의 1을 차지한다는 바자는 친절과 환대로 유명한 곳이다. 흥정하는 소리로 떠들썩하기는 했지만 상인들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연일 긴박하게 전개되는 바깥세상의 움직임이 속속 전해지면서 무거운 공기가 시장을 짓누르는 듯했다. 당장 테헤란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눈에 띄게 줄었다.

금은세공품을 파는 한 상인은 “관광객이 줄어서인지 요즘 벌이가 신통치 않다”며 “뭔가 모를 긴장된 분위기에다 정부가 연 20%대의 이자율을 10%대로 끌어내리면서 금값이 폭등했다”고 투덜댔다. 시장에 옷을 사러 나왔다는 30대 시민은 “이란은 이라크와 다르다”며 “미국은 우리를 공격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모하마드 에브라힘 데가니 장군은 “이란 군대는 미국의 B-52 폭격기에 결연히 맞서 싸울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테헤란 도심은 분주하고 소란스럽다. 출퇴근 시간대엔 뒤엉킨 차량들로 3차로가 금세 5차로가 되어 버리지만 모든 차량이 신호도, 법규도 없는 혼잡 속에서도 곡예운전을 하며 신기하게 제 갈 길을 잘 찾아간다.

한 외교관은 “워낙 무질서가 난무하다 보니 무질서가 당연시되고 그 속에서 나름의 절묘한 질서가 형성되는 사회”라고 진단했다. 이란 주민들이 미국의 공격 가능성을 애써 부인하는 이유도 ‘무질서 속의 질서’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테헤란대 에너지연구소의 파르항그 잘릴리 소장은 “(이라크처럼) 그렇게 쉽게 군사 공격이 가능하겠느냐”고 반문했다.

2일 미국 항모 엔터프라이즈가 7500여 명의 병력을 실은 채 버지니아 주의 노퍽 해군기지를 출발해 걸프 만으로 향했다고 CNN방송이 전했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미국의 협박이 우리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다”며 안보리의 제재 논의와 상관없이 핵개발을 강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한 택시운전사는 “모든 사람이 걱정한다”고 털어놓았다.

“공격당하면 맞서 싸우겠다”며 항전 의지를 다지는 사람이 많기는 했지만 테헤란 시내에는 긴장과 불안감이 짙게 감돌았다.

이철희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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