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 베트남 “자본가도 동지다”

  • 입력 2006년 4월 20일 03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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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북한, 베트남. 아시아에서 사회주의 일당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들이다. 북한은 말할 것도 없고, 개혁 개방으로 이미 시장경제체제에 편입된 중국과 베트남도 정치권력만큼은 ‘노동자 농민의 일당 독재’를 고수해 왔다. 하지만 중국이 2002년 장쩌민(江澤民) 당시 국가주석의 주도로 노동자 농민의 ‘적(敵)’인 자본가의 공산당 가입을 허용하는 ‘3개 대표론’을 채택한 데 이어 ‘리틀 차이나’로 불리는 베트남 공산당도 18일 개막된 제10차 전당대회에서 같은 모델을 도입할 계획이다.》

공식적으로 ‘프롤레타리아(무산계급) 독재’ 종식을 선언하는 것이다. 25일까지 이어지는 베트남 전당대회의 최대 현안이다. 이제 남은 것은 북한뿐이다.

○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종언

“앞으로 정부의 정책 수립 과정에서 실질적인 시장경제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기 때문에 베트남 경제발전을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 수도 하노이에서 컨설팅업체를 운영하는 하이(34) 씨는 베트남 공산당이 자본가의 당원 가입과 당원들의 경제활동을 허용하도록 당 헌법을 고친다는 방침을 환영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 헌법에 ‘베트남 공산당은 노동자 계급의 선봉대’라는 표현을 ‘인민과 노동자의 선봉대’로 바꾼다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공산당이 주요 정책을 결정할 때 정치적인 측면만 고려했기 때문에 시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베트남 공산당의 이번 결정은 1930년 출범한 ‘무산계급의 당’이 76년 만에 ‘자본가와 노동자가 함께하는 당’으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8300만 명의 인구 가운데 310만 명이 당원으로 가입한 베트남 공산당은 지금까지 기업 경영 등 사업을 하는 자본가의 당원 가입을 금지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2000년 이후 매년 수만 개씩 개인기업이 생겨나고 국영기업이 민영화돼 사업가를 당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당원들의 사업 참여를 봉쇄하면 당의 존립 자체가 위태롭게 됐다.

○ 세대교체 실험

베트남은 이번 전당대회에서 사회주의 일당 독재 체제는 물론 서구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실험들을 실시한다.

우선 형식적인 통과의례에 불과했던 전당대회의 성격을 바꿨다. 정치국원들의 합의로 사전에 결정된 공산당 서기장을 발표하는 전례를 깨고 대의원들의 직접 토론을 통해 당 서기장을 선출하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또 핵심 권력기구인 중앙집행위원회와 정치국원들의 연령을 제한하는 규정을 도입하기로 했다. 중국식이다. 이에 따라 쩐득르엉(69) 국가주석, 판반카이(73) 총리를 포함해 15명의 정치국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9명이 물갈이된다. 국가주석과 총리는 공산당 서기장과 함께 베트남을 이끄는 지도부의 ‘3두(頭) 체제’다.

초임 집행위원은 55세, 초임 정치국원은 60세 이하로 제한했다. 재임 정치국원은 65세 이하.

중국도 1997년 정치국 상무위원은 75세, 정치국 위원은 70세, 당 중앙위원은 65세로 정년을 제한했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中 공산당 ‘3개 대표론’…김정일 옹호 눈길▼

중국의 ‘3개 대표론’은 장쩌민 전 주석이 주창한 것으로 공산당이 △선진 생산력(자본가) △선진문화 발전(지식인) △광대한 인민(노동자 농민)의 근본 이익을 대표해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는 개혁개방에 따라 사회의 주요 세력으로 성장한 자본가와 지식인을 포용해야 한다는 현실적인 필요에서 나온 것으로 당이 권력기반을 자본가 계급으로까지 넓힌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3개 대표론’은 2000년 2월 25일 당시 장 주석이 광둥(廣東) 성을 시찰하면서 “당의 생존을 위해서는 ‘3개 대표’ 정신을 견지해야 한다고 밝히면서 첫선을 보였다. 2002년 11월 열린 제16차 전국대표대회에서는 공산당의 당 규약에 삽입되었다.

북한의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은 1월 중국을 방문해 후진타오(胡錦濤) 주석과 회담하면서 “중국의 경이로운 발전은 중국 공산당이 제기한 3개 대표론과 과학적 발전관, 조화로운 사회주의 건설 등 새로운 노선과 정책을 제시했기 때문”이라며 처음으로 3개 대표론을 옹호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베이징=하종대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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