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레반 전사서 美 예일대생으로…아프간 외교관의 인생유전

  • 입력 2006년 2월 28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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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외교관에서 미 명문 예일대 학생으로….’

아프가니스탄 탈레반을 위해 활약했던 사예드 라마툴라 하셰미(27) 씨. 한때 그는 탈레반의 ‘전사’로 반미 선동과 탈레반 선전의 선봉에 섰다. 그런 그가 미국 유수의 대학에 들어가게 된 극적인 인생 유전을 뉴욕타임스 매거진 등이 26일 집중 조명했다.

9·11테러 발생 약 6개월 전인 2001년 3월. 그는 예일대 캠퍼스에서 열린 ‘아프간 탈레반에 대한 다각적 고찰’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 연사로 참석했다. 그리고 당시 한국계 저명 법학자로 인권문제에 정통한 고홍주 예일대 법대 교수와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아프간 여성들은 홀로 외출도 못한다.”(고 교수)

“아프간에 가 보신 적은 있습니까…. 당신에게서 탈레반 얘기를 들었다면 누구라도 우리를 증오하겠군요.”(하셰미 씨)

그로부터 4년 뒤인 지난해 여름. 그는 다시 예일대 학생으로 캠퍼스에 돌아왔다. 정규교육이라곤 초등학교 4학년을 마친 게 전부인 그는 비록 청강생 신분이지만 “관타나모 수용소 대신 이렇게 공부할 수 있는 건 기적이다”라고 털어 놨다.

4세 때부터 파키스탄의 난민캠프에서 자란 그는 청소년 시절 국제구조위원회가 세운 학교에서 영어를 배웠다. 그 덕으로 1994년 아프가니스탄 젊은이들이 세운 ‘탈레반’ 독립군에 가입했던 그는 탈레반이 집권하자 2000년 서방측에 탈레반 입장을 알리는 ‘외교관’으로 임명됐다.

이런 그의 인생이 바뀐 것은 2001년 9월 11일. 테러 발생 직후 탈레반 외무부 장관은 직원들에게 “오사마 빈 라덴을 지원해 온 우리는 끝장났으니 각자의 길을 가라”고 말했다.

다시 파키스탄으로 돌아가 실의에 빠져 있던 그에게 평소 친분이 있던 미국 다큐멘터리 작가 마이크 후버 씨가 미국에서 공부해 보라는 뜻밖의 제안을 했다. 예일대 졸업생 친구를 통해 다리를 놔 준 것도 그였다. 대학 측은 “우리가 접근하지 못하는 세상을 알려줄 수 있는 인물”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수학의 기회를 제공했다.

아직은 ‘퀴즈와 테스트의 차이’를 어리둥절해할 만큼 모든 게 새롭기만 한 그이지만 첫 학기 평균 학점은 3.33(B+). 학교 측은 내년부터 하셰미 씨를 공식 학사 학위 2학년생으로 편입시킬 예정이다. 탈레반 전사에게 미국 제도권 주류가 아메리칸드림의 문을 열어 준 것이다.

김정안 기자 cred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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