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라 불러도 돼요?”…美소년, 정자기증 生父 찾아내

  • 입력 2005년 11월 4일 03시 05분


코멘트
《어머니가 익명의 남자에게서 기증받은 정자로 시험관 수정을 해 세상에 태어나게 된 한 미국 소년이 유전자 검사와 인터넷을 이용해 ‘생물학적 아버지’를 찾는 데 성공했다. 이 소년은 정자 기증자의 신원을 보호하는 법률을 위반하지 않고 생부를 찾아냈기 때문에 불임 부부를 위한 정자 기증자의 익명성 보장 제도가 위태롭게 됐다고 영국의 일간지 더 타임스가 2일 지적했다.》

○ 생부 찾아 9개월

미국에 사는 이 15세 소년은 입 안을 면봉으로 문질러 얻은 세포를 미 텍사스 주의 인터넷 족보사이트인 패밀리트리DNA닷컴(FamilyTreeDNA.com)에 보냈다. 이 사이트는 보유 중인 데이터베이스의 Y염색체와 이 소년의 Y염색체를 비교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Y염색체는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유전되기 때문에 친자 관계를 확인할 수 있는 열쇠로 꼽힌다. 의뢰한 지 9개월 만에 이 소년은 이 사이트의 연락을 받았다. Y염색체가 비슷한 남자 2명을 찾아냈다는 소식이었다.

Y염색체가 유사하다는 것은 소년과 2명의 남자가 아버지나 할아버지 또는 증조할아버지가 같을 확률이 50%라는 뜻이다. 특히 2명의 남자는 철자는 다르지만 ‘성(姓)’의 발음이 같았다. 이 단계까지 289달러(약 30만 원)의 비용이 들었다.

소년은 이 ‘성’을 또 다른 사이트(Omnitrace.com)로 보내 검색을 의뢰했다. 자신이 태어난 불임클리닉에서 알아낸 생부의 생년월일과 출생지, 출신 대학 정보도 함께 보냈다. 결국 빙고(Bingo)! 소년은 생부를 찾아냈다.

○ 정자의 익명성 ‘흔들’

이 소년은 생부를 찾을 때까지 불법적이거나 비윤리적인 행동은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 미국에선 정자 기증자의 신원이 법으로 보호되며, 영국 수정배아관리국(HFEA)도 불임센터가 정자 기증자의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유전자 정보를 분류하고 저장하는 사이트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브라이언 사이크스 옥스퍼드대 교수는 “영국에선 2, 3년 후면 거의 모든 ‘성’과 유전자의 관계가 조사돼 출판까지 될 것”이라고 말했다.

5만 건이 넘는 Y염색체 정보를 보유한 패밀리트리DNA닷컴은 현재 2400건의 검색 작업을 진행 중이다. 미 유타 주의 소렌슨재단은 증조부까지 4대의 혈통을 정리한 50만 명의 유전 정보를 모으고 있다.

영국 과학주간지 뉴 사이언티스트는 “개인의 유전 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시대는 익명의 정자 기증자들을 불안하게 할 것”이라며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수십 명의 자식이 자신을 아버지라 부르며 만나러 오는 상황을 상상하지도 못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