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눈/윌리엄 파프]미국식 정책 거부한 유럽의 선택

  • 입력 2005년 10월 26일 03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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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대륙의 올여름과 가을 선거는 미국식 경제정책과 토니 블레어식 외교정책을 심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으나 결과는 예상과 달랐다.

프랑스와 네덜란드는 유럽연합(EU) 헌법 인준을 위한 국민투표에서 실패했다. 두 국가는 EU 헌법에 담겨 있는 경제적 함의가 그동안 보장된 평균 생활수준을 위협하는 것으로 보고 반대했다. 동화되지 못하는 거대한 이민사회를 초래하고 있는 유럽 사회의 세계화에 반대한 셈이다.

9월에는 독일에서 선거가 있었다.

독일은 우경화될 것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정확한 중도를 선택했다. 사회민주당(SPD)과 기독민주연합(CDU)의 대연정이 형성됐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 내정자가 지난주 발표한 새 내각 명단은 미국의 유쾌한 환상을 깼다. 이라크전쟁에 반대해 온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와는 반대로 메르켈 내정자는 블레어 영국 총리(나아가 프랑스의 유력 대선 후보인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와 뜻을 합쳐 ‘낡은(old)’ 유럽을 미국식 경제모델로 개혁하고, 북대서양 지역에 한정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역할을 전 세계적 차원으로 넓혀 미국 정책을 지원하는 쪽으로 이끌 것이라는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메르켈 내정자는 실망을 안겨 줬다. 소득세율의 단일화는 없었던 일로 됐다. 메르켈 내정자는 바바리아 주 총리인 에드문트 슈토이버 기독사회연합(CSU) 당수를 경제장관으로 선택했는데 그는 경제에서 정부의 역할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페르 슈타인부르크 재무장관 내정자는 유럽에서 가장 큰 중공업지대 중 하나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에서 경제 실용주의를 추구해 온 개혁파지만 SPD 사람이다.

외무장관은 슈뢰더 총리의 전 비서실장으로 그의 최측근인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로 낙점됐다. 워싱턴 정부와의 냉기류에 변화가 생길 조짐은 없다. NATO는 북대서양 지역의 군사공동체로만 남아 있을 것이다.

미국은 인정하기를 꺼리지만 미국과 유럽의 관계가 표류한 지는 꽤 됐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악의 축’ 발언에 담긴 묵시론적 비전, 첫 번째 임기 중의 외교 일방주의와 치밀하지 못한 정책(포로 고문, 조약 무시 등)은 미국과 주요 동맹국 사이에 잠재된 갈등을 표면으로 부상시켰을 따름이다.

이미 많이 언급됐듯이 소련 붕괴 이후 미국과 다른 나라 사이의 힘의 격차는 미국의 힘을 제어하려는 반작용을 자연스럽게 유발했다.

여기에는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적 모델에 대한 환멸 즉, 미국식 모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믿음도 한몫했다. 미국 사회의 평균 생활수준이나 조건, 미국식 민주적 절차의 기능과 사법 관행은 미국 밖에서는 존경을 받지 못한다. 미국 경제는 성숙한 탈제조업적 기업이 덜 성숙한 제조업 기업을 잡아먹는 ‘제국주의적(imperial)’ 성향을 보이고 있다.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 같은 비판가는 세계 일류의 제조업을 통해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 세대에게, 또 그들의 자녀와 손자에게까지 확고한 일자리와 안전망을 제공해 온 미국 사회의 위대한 성취가 붕괴된 것이라고 본다.

미국식 사회모델이건, 서유럽식 사회모델이건 오늘날 세계화에 의해 그 가치가 훼손됐다. 미국과 서유럽은 각각 해결책을 찾아 서로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네덜란드 프랑스 독일의 선거 결과는 유럽이 자기 나름의 새 해결책을 찾고 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윌리엄 파프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칼럼니스트

정리=송평인 기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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