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육군 엘리트장교의 추락

  • 입력 2005년 10월 24일 17시 2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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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육군의 최고 엘리트 장교가 전쟁을 겪으면서 사람이 바뀌어 갔고, 결국 추락했다.'

뉴욕타임스가 일요일에 발간하는 뉴욕타임스 매거진이 23일자 커버스토리에서 다룬 영화 같은 이야기다.

비운의 주인공은 부대원들의 일탈행위에 지휘책임을 지고 최근 불명예 제대한 나산 사사만(41) 중령.

사사만 중령은 지적능력, 체력, 리더십 등 모든 분야에서 선두를 달려온 미 육군의 최고 엘리트.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를 나왔지만 그는 프린스턴대에서도 입학허가를 받을 정도로 학업 성적이 우수했다. 풋볼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던 그는 웨스트포인트가 1980년대 경이적인 성적을 기록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해 이미 미 육군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스타'였다.

그는 이라크에 배치돼서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 워싱턴대 행정학 석사 출신이기도 한 그는 담당지역인 발라드에서 이라크 어느 지역보다 먼저 자체 주민투표를 통해 자치조직을 구성했다. 매주 금요일에는 현지 이라크 인들과 부대원들이 축구를 함께 할 정도로 현지인들과 관계도 좋았다.

이처럼 이라크 재건에 대해 남다른 열정을 가졌던 사사만 중령이 2003년 11월을 기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한 부대원이 수니파 밀집지역인 히쉬마에 순찰 나갔다가 반군이 던진 수류탄에 맞아 몸이 두 동강이 나 숨지자 그는 '다른 사람'이 됐다.

이라크 인에게 배신당했다고 생각한 그는 '철권통치'를 택했다. 히쉬마를 봉쇄하고 성인 남자에게는 별도 신분증을 발행해 신분증이 없으면 도시 출입을 막았다.

반군의 공격에 대해선 잔인한 피의 보복으로 맞섰다. 사령부가 공격을 받자 항공폭격을 두 차례나 요청해 수천 파운드의 폭탄을 쏟아 붇게 했다. 반군 색출 작업도 무자비했다. 반군으로 의심받는 사람이 살고 있는 집에 대해서는 대(對)탱크 미사일을 쏘아 초토화시키기도 했다.

이 같은 철권통치로 반군의 공격은 줄었지만 대가는 컸다. 이라크 인들이 밤에 아이들에게 "말을 듣지 않으면 사사만 중령이 와서 잡아 간다"고 말할 만큼 그는 공포와 저주의 대상이었다.

직속상관이 "지나치게 공격적인 방식은 자제하라"고 지시했지만, 그는 "현장을 모르는 소리"라며 자신의 방식을 고집했다. 그의 묵인 아래 부대원들은 이라크 인들을 상대로 불법적인 폭력행위를 계속 저질렀다. 그의 불명예제대 계기가 된 사건은 단지 통금시간을 어겼다는 이유로 부대원들이 이라크 민간인 2명을 강물 속으로 집어넣어 이 중 1명이 익사한 사건이었다.

사려 깊고 이상주의 성향이었던 엘리트 장교가 부하가 참혹하게 숨져가는 과정을 겪으면서 점차 인간성이 황폐화된 '점령군'으로 바뀐 것이다.

비록 상황은 다르지만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의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떠올리게 하는 것도 바로 이런 측면 때문이다.

19년 군대생활을 정리하고 풋볼코치를 하려고 한다는 그는 '이라크 경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뉴욕타임스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들(육군)은 우리를 버스 밑에 내동댕이쳤다."

뉴욕=공종식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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