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건제도 섬나라 ‘사크’ “자본주의 유입 막아라”

  • 입력 2005년 10월 1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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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마지막 봉건국가 ‘사크(Sark)’가 자본주의의 공격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440년 동안 봉건영주의 지배하에 살아 온 주민들은 사크를 자본주의적 근대국가로 탈바꿈시키려는 외부 기업에 맞서 독자적인 삶의 방식을 지켜 나가기 위해 고된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이 11일 보도했다.

영국해협의 채널 제도에 위치한 사크는 1565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해적을 격퇴해 주는 대가로 이 봉건영지에 사실상 독립을 허용한 이래 독자적인 방식으로 살아왔다.

영토 전부를 합쳐봐야 10km²밖에 안 되는 이 소국의 지도자는 ‘세뇌르(Seigneur)’로 불리는 대영주. 그는 매년 영국 왕에게 상징적 금액인 1.75파운드를 세금으로 바치며 섬을 다스려 왔다. 그 밑에는 대영주로부터 토지를 하사받은 수십 명의 소영주가 있으며 대다수 주민은 소영주의 땅을 일구고 매년 일정액의 지대를 바치며 살고 있다. 사크 의회는 5일 지난 5년간에 걸쳐 완성한 헌법 개정안을 폐기하고 18개월 내에 새로운 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달 영국 여왕은 개정안 내용이 “별로 개혁적이지 않다”며 승인을 거부한 바 있다.

영국 왕실은 새로 마련될 개정안에 의회 규모를 축소하고 의원 중 세습직 영주의 비율을 절반 이하로 줄이며 행정직 권한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도록 권고했다. 외부인의 토지 매입을 간소화하고 이에 부과되는 세금을 낮추는 내용도 추가될 예정이다.

사크 헌법 개정 논의가 처음 시작된 것은 1990년대 중반 데일리텔레그래프 신문과 런던 리츠호텔 등을 소유한 영국 바클레이 그룹이 이 나라에 관심을 보이면서부터. 당시 사크 부근의 섬을 사들여 관광지로 개발한 바클레이 그룹의 쌍둥이 소유주 데이비드와 프레드릭 바클레이 씨는 “사크 의회가 무능력한 세습 영주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봉건적 토지제도가 관광 잠재력을 갉아먹고 있다”면서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강력히 제기했다. 이들은 사크 헌법의 일부 조항에 인권침해적 요소가 있다면서 유럽인권재판소에 제소하기도 했다.

사크 주민들은 “영국 왕실이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한 헌법 개정안을 거부한 배후에는 바클레이가 있다”면서 반발하고 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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