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統獨 15주년 현장을 가다]<中>경제 통합은 언제

  • 입력 2005년 10월 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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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옛 동독의 유서 깊은 도시인 드레스덴에서 베를린으로 가는 철도변의 풍경은 황량했다. 겨자색 건물들은 검댕을 뒤집어 쓴 듯 시커멓게 보였다. 군데군데 유리창이 깨진 건물도 있었다. “왜 유리들이 깨졌죠?” 옆자리의 독일 청년에게 물어보았다. “사람들이 떠나 빈집이 돼 그렇습니다. 경치 좋은 곳에도 빈 집이 널렸는데 왜 시끄러운 철길 가까이에 살겠습니까.” 그에게 읽던 신문을 보여 주었다. 신문에는 ‘인근 60km에 빵집도, 고깃간도, 의사도 없는 새로운 벽촌이 옛 동독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고 쓰여 있었다.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다. “먹고살 일자리가 없으니 마을이 비어갈 수밖에요.”

이런 공동화 현상은 심각한 수준이다. 옛 동독 지역 5개 연방주 인구는 통일 이후 15년 동안 130만 명이나 줄었다. 이 지역 인구의 약 9%에 해당한다. 같은 기간 서독 지역 인구는 자연 증가분을 포함해 400만 명 늘었다.

노동 인구의 유출은 더욱 심각하다. 2004년 동독 지역을 떠난 인구 중 54%가 18∼30세의 청년층으로 분석됐다. 그렇게 많이 떠났지만 동독 지역의 실업률은 18.2%로 서독 지역의 2배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통일 직전 서독 정부는 동독인들에게 옛 동독 마르크화를 실질 구매력의 3배로 평가해서 서독 마르크화와 1 대 1로 교환해 주며 풍요로운 삶을 약속했다. 그 뒤 15년 동안 2500억 유로(약 310조 원)라는 천문학적인 돈이 동독에 투자됐다. 그러나 이 돈의 70%는 생산설비가 아닌 단순 소비시설에 투자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날 저녁, 기자는 베를린 인근 포츠담의 ‘루스트 가르텐(즐거움의 정원)’으로 향했다. 이곳에서는 독일 통일 15주년을 맞아 ‘미래가 자란다-통일 15주년’이라는 슬로건 아래 콘서트 등 각종 축하행사가 열렸다. 3일 0시 통일 기념일이 되자 화려한 불꽃놀이쇼가 펼쳐졌다. 가족 단위로 나온 독일인들은 환성을 지르며 즐거워했다.

막내딸을 목말 태운 롤프(46) 씨도 “모처럼 행복한 주말을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1년 이상 놀았던 그는 올여름에 취직했다. 그도 서른 즈음에 통일을 맞아 장벽을 넘으며 환호하던 즐거운 추억을 갖고 있다. 그러나 다니던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실직과 취직을 반복했다. 그는 “친구들 대부분이 통일 뒤 긴 실직상태를 경험했다”고 말했다. 공장이 빠져나간 자리에 새 공장이 들어서길 기대했지만 아무것도 생기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부의 사민당 소속 만프레트 슈톨페 동독부 장관은 통일 15주년을 맞는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높은 실업률만을 보지만 동독 지역의 소득은 서독 지역의 83%까지 올라갔다. 1991년에 비하면 두 배 넘게 올랐다”고 말한다.

독일정부는 올해부터 15년 동안 1560억 유로(약 200조 원)를 동독 지역에 더 투자할 계획이다. 그러나 최근 폴크스바겐과 다임러크라이슬러 등 자동차계의 거인들도 잇달아 감원을 발표하고 있는 상황에서 ‘선진 산업’이 집중 투자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슈톨페 장관의 말대로 동독 지역의 소득이 크게 증가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노동력이 줄어들면서 이 지역의 사회 관습마저 바뀌고 있다. 최근 일간 ‘타게스차이퉁’은 ‘통일의 윤리’라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경제난으로 인해 동독 지역은 윤리의 전위(아방가르드) 지대가 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아이를 낳지 않기 위한 계약결혼, 다중커플이 성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동독 지역은 ‘가족주의’의 전통이 살아있는 것으로 생각돼 왔기에 이 보도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베를린=유윤종 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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