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피해 송유관, 아제르에선 독재 안전판?

  • 입력 2005년 6월 29일 03시 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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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 로드(Oil Road)’는 민주주의와 자유가 찾아오는 길목인가, 아니면 부패한 독재정권의 안전판인가.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와 그루지야의 트빌리시, 터키의 세이한을 잇는 세계 최장의 ‘카스피 해 송유관’(BTC 송유관)을 둘러싼 논란이다. 이 송유관은 5월 25일 개통돼 카스피 해 석유를 하루 최대 100만 배럴가량 지중해로 시험적으로 보내고 있다.

▽BTC 송유관의 특징=10월 중순 송유관이 완전 가동되면 세계 하루 석유 소비량의 1%를 운송하게 된다. 이 송유관은 러시아와 이란 영토를 지나지 않아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안전을 걱정하지 않았다. 송유관 건설 컨소시엄에는 영국과 미국 등 서방 석유업체가 대거 참여했다. 이 때문에 송유관은 ‘실크 로드’에 빗대 ‘오일 로드’로 불린다.

▽정정 불안=송유관이 시작되는 아제르바이잔은 대통령 부자(父子) 세습체제를 이룬 국가. 일함 알리예프 현 대통령은 2003년 사망한 아버지 게이다르 알리예프 전 대통령의 뒤를 이었다. 당시 선거부정 항의시위가 일어나 200여 명이 죽거나 다쳤다.

알리예프 대통령은 그 뒤에도 야당과 언론 탄압을 계속하고 있다고 LA타임스가 28일 보도했다. 언론인인 엘마르 후세이노프 씨가 정권을 향해 필봉을 휘두르다 3월 살해된 것이 대표적 사례다.

▽미국은 여전히 ‘모르쇠’=송유관 개통으로 아제르바이잔 야당은 미국이 내세우는 ‘자유의 확산’이 이뤄지길 기대했다.

많은 국민이 2003년 그루지야의 장미혁명과 2004년 우크라이나의 오렌지혁명에 이어 올해 11월 총선거에서 민주화혁명이 일어날 것으로 희망하고 있다. 18일에는 1만 명이 넘는 시위대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사진을 들고 “자유를 달라”며 거리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미국은 이에 대해 지지 의사를 표시하지 않았다. 폭정의 거점으로 지목했던 벨로루시의 민주화를 촉구하는 성명을 낸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아제르바이잔의 정권 교체가 송유관이 미국에 주는 경제적 이익을 해칠까 우려해서다.

이 진 기자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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