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이기완]‘팍스 니포니카’ 꿈꾸는 일본

  • 입력 2005년 5월 17일 18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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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일본은 영토분쟁이나 역사왜곡 문제 등으로 인근국과 스스로 갈등을 야기함으로써 그간 공들여온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 암초를 맞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국제 외교의 주류 무대에서 밀려났던 일본은 냉전 종식과 걸프전쟁을 계기로 유엔 안보리 진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

일본이 미국 및 서방 국가의 지지 속에 상임이사국이 되면 세계적인 정치 군사 대국으로 나아가는 ‘합법적’인 채널을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일본은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도발자라는 낙인으로 국제질서에의 적극적 공헌을 수행할 수 없었던 ‘특수한 국가(abnormal state)’였다.

이에 따라 일본은 15년간 상임이사국 진출을 위한 본격적인 작업에 착수하여 국제개발협력, 인도주의적 원조, 유엔 평화유지활동비 분담 등에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써 ‘표 모으기’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또 그동안 안보리 개혁에 소극적이던 미국을 설득하여 상임이사국 진출의 가장 중요한 관문을 이미 통과한 상태이다. 더욱이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적 침략을 경험한 동아시아의 일부 국가도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에 크게 반대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최근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 시도는 일본이 국제외교의 주류 무대로 진출하겠다는 것이다. 사진은 자위대의 훈련 모습. 동아일보 자료 사진

이 시점에서 일본이 인근국과 갈등을 자초하는 것은 얼핏 보면 지난 15년간의 노력을 수포로 돌아가게 할 수 있는 일본 외교의 서투름 내지 자충수로 풀이된다.

하지만 이것은 ‘준비된 외교전략’으로 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이 동아시아 인근국, 특히 중국의 반대로 무산될 경우 오히려 일본은 상임이사국 진출에 맞먹는 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상임이사국 진출 좌절은 국민들의 국가에 대한 불만을 인근국에 대한 대항 의식으로 전환시켜 일본 사회의 우경화와 군사적 역할 확대를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일본에 대한 인근국의 비난을 일본 사회의 최대 정치적 쟁점으로 부각시켜 국가주의 정서를 강화하며 이를 ‘공격적 민족주의’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 여기에 ‘안보리 개혁안’을 목전에 두고 일본이 주변국들과 갈등을 일으키는 진실이 숨어 있는 것이다.

1990년대 이래 일본 국가전략의 목표는 세계 2위의 경제력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강화하고 국제정치에 적극 개입할 수 있는 일본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는 데 있어 일본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은 소위 ‘일본 문제’에 대한 인근국에서의 비판적인 논의를 ‘주권 침해’라고 불쾌하게 생각하는 일본 국민을 하나로 묶어 내는 것이다. 이를 통해 공격적 민족주의의 정서를 부활시키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상임이사국 진출이 일본에 절대적 외교 과제는 아니라고 볼 수 있다.

많은 국제문제 전문가들이 일본 외교의 최종 목표를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로 파악해 최근 일본 국가전략의 목표가 커다란 난관에 봉착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분석에 대해 일본은 겉으로는 수긍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지만, 내심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을 수도 있다. ‘팍스 니포니카(Pax-Nipponica)’의 건설을 꿈꾸며….

이기완 창원대 교수·국제관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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