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안락사 논쟁]“죽을 권리” vs “생명 우선”

  • 입력 2005년 3월 20일 18시 34분


코멘트
15년째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다. 배꼽 위에 꽂힌 튜브로 투입되는 비타민 복합물이 그나마 생명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다. 이따금 미소 짓기도 하지만 ‘반사작용’에 불과하다.

1990년 스물여섯 나이에 심장발작으로 뇌를 다친 테리 샤이보(40) 씨의 안락사를 허용할 것이냐는 논쟁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이번에는 미국 상·하원까지 나섰다.

테리 씨의 남편 마이클 씨는 “깨끗하게 죽을 권리가 있다”며 7년 법정투쟁 끝에 플로리다 주 법원으로부터 안락사 권리를 받아냈고, 테리 씨를 보호하고 있던 피넬라스파크의 우드사이드 요양소는 18일 급식 튜브를 떼어냈다. 앞으로 특별한 조치가 없다면 그는 약 2주 후 서서히 숨을 거두게 된다.

그동안 테리 씨의 부모가 “그 아이는 내 삶 자체”라며 눈물로 호소하고 수많은 미국인이 곳곳에서 눈물의 집회를 개최했지만, ‘죽을 권리’를 인정한 법원의 판결을 돌려놓지는 못한 것이다.

그러나 워싱턴 정치권이 19일 부활절 연휴로 닫았던 의회의 문을 열며 테리 씨를 살리기 위한 특별법안에 전격 합의하면서 상황은 급반전했다. 공화 민주 양당은 “비참한 삶이라도 제3자가 빼앗아 갈 권리가 없다”며 연방법원이 테리 씨의 사례만을 따로 재검토(상원 합의)하거나, 연방법원이 전체 안락사 사건을 심리(하원 합의)하도록 만든 것이다.

하원은 테리 씨의 가족에게 25일 청문회에 출석할 것도 통보했다. 톰 들레이 공화당 하원 원내총무는 “청문회 증인의 신변은 보호돼야 한다”는 연방 청문회법 조항을 들어 테리 씨에게 영양 공급이 재개돼야 한다는 점도 지적했다.

스콧 매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즉각 “조지 W 부시 대통령 역시 휴가지인 텍사스 크로퍼드 목장의 휴가 일정을 단축해 20일 워싱턴으로 돌아온다”고 밝혔다.

정치권의 적극 개입은 지난해 대선을 거치며 확인된 기독교계 보수주의자의 정치적 영향력을 고려할 때 예상됐던 결과라는 것이 미 언론의 분석이다. 특히 낙태 안락사 문제를 놓고 ‘당사자의 선택권’을 강조하던 민주당도 적극 동참한 것이 눈에 띈다.

그러나 남편 마이클 씨는 “마지막 길에 오르는 아내를 장기판의 졸로 만들어 버린 정치권의 결정이 역겹다”는 뜻을 변호인을 통해 전달했다.

CNN, 폭스뉴스 등에 출연한 법률 전문가들은 “미 의회가 법원의 결정이 이미 내려진 사안을 되돌릴 수 있을지는 자신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밝혔다. 2003년 부시 대통령의 친동생인 젭 부시 플로리다 주지사가 “테리 씨를 살려야 한다”며 주 법원의 안락사 허용 결정을 되돌리는 ‘테리의 법’ 통과를 주도했지만 “법원의 결정을 의회가 개입해 바꿀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된 바 있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