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내정간섭 말라”…레바논 사태, 내전 치닫나

  • 입력 2005년 3월 9일 18시 2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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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향목(레바논의 국목·國木) 혁명’으로 지칭되는 레바논 민주화가 암초를 만났다. 민주화의 꽃을 채 피우기도 전에 자칫 내전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상황으로 돌입했다.

지난달 라피크 하리리 전 총리 암살을 계기로 연일 반(反)시리아 시위가 일어난 데 이어 최근엔 친(親)시리아 시위가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

레바논 주둔 시리아군이 철수를 시작한 8일, 수도 베이루트 중심가에 시리아를 지지하는 50만 명의 레바논 시민이 모여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내정간섭’을 규탄했다. 전체 레바논 인구(약 370만 명)의 10%가 훨씬 넘는 수다.

시위대는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감사합니다’ ‘외국 간섭 반대’ 등이 쓰인 깃발을 흔들고 “미국은 가라”는 구호를 외쳤다.

시리아에 대한 입장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갈리는 이유는 레바논의 복잡한 종족 구성 때문. 레바논은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19개 종파가 아슬아슬하게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국가다.

반시리아 시위를 주도하는 것은 기독교 내 마론파다. 이들은 레바논의 ‘피플 파워’로 불리며 친시리아 내각을 해산시키는 힘을 보여 주기도 했다.

이에 반해 친시리아를 외치는 시위대들은 시아파 중심의 헤즈볼라. ‘신의 정당’이란 뜻의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이 레바논을 침공한 1982년 창설됐다. 이란과 시리아가 지원하는 돈과 무기로 미국과 이스라엘에 맞서 왔다. 미국으로부터 대표적인 테러단체로 지목되고 있는 헤즈볼라는 레바논 내 약 120만 명에 이르는 시아파의 지지를 받고 있다.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는 7일 “시리아군의 철수를 둘러싼 종파 간 갈등으로 레바논 사태가 유혈분쟁으로 다시 번질 수 있다”며 “시리아군이 한순간에 빠져나가면 균형점이 사라지면서 레바논에서 다시 내전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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