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원재]NHK개혁 이끌어낸 수신료 거부운동

  • 입력 2005년 1월 30일 17시 3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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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자들의 반발이 있을 것이라곤 생각했지만 이 정도로 클 줄은 몰랐다.”

일본 공영방송 NHK의 하시모토 겐이치(橋本元一) 회장은 28일 다시 고개를 숙였다. 그리곤 에비사와 가쓰지(海老澤勝二) 전 회장 등 전직 경영진 3명의 고문직 위촉 결정을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25일 취임 기자회견에서 NHK 재건 구상을 의욕적으로 밝힌 지 불과 사흘 만의 일이다.

제작비 횡령 등 직원 비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물러난 에비사와 전 회장이 사임 다음 날 유급 고문으로 위촉되자 여론의 비판은 매서웠다.

현 경영진은 전직 간부들의 경험을 활용하기 위해서라고 주장했지만 세간의 시선은 달랐다. 특히 7년 6개월간 장기 재임한 에비사와 전 회장이 ‘자기 사람’을 사내 곳곳에 심어 놓은 점을 들어 ‘사실상의 수렴청정’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NHK에는 항의 전화와 e메일이 6500건 이상 쇄도했다. “시청자를 바보로 아는가”, “반성한 줄 알았는데 또 속았다”, “이런 식이라면 시청료를 내지 않겠다”…. 민방인 후지 TV 사장도 “NHK엔 상식이 부족한 것 같다”고 꼬집었다.

현장의 시청료 징수원들은 “시청료 납부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설득할 방법이 없다”며 발을 굴렀다. 작년 11월 말 11만3000건이던 납부 거부 건수가 이런 추세라면 올해 말엔 50만 건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시청자들의 공세에 NHK 경영진은 결국 항복을 선언했다. 전 회장의 섭정 시도는 ‘3일 천하’로 끝났다.

하시모토 회장은 29일 특별 프로그램에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불필요한 부담을 주지 않겠다는 각오로 경비 삭감에 힘쓰겠다”며 내부 개혁을 다짐했다.

일본의 시청자들은 시청료를 징수원에게 직접 납부하거나 별도의 계약을 통해 자동이체로 낸다. 공영방송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시청료는 이렇게 ‘민의의 무기’가 된다.

한국에서 통합공과금과 함께 부과되는 시청료 납부 방식의 선택권을 시청자들에게 돌려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시청료를 무기로 NHK 경영진의 오만한 행태를 뜯어고친 일본의 사례는 한국 공영방송 개혁에도 좋은 시사점을 던져 준다.

박원재 도쿄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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