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저격사건 문서공개]일본측 반응-당시 미국의 역할

  • 입력 2005년 1월 20일 18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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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측 반응▼

일본 언론들은 문세광 사건 관련 외교문서 공개에 대해 당시 한국 정부가 조총련에 대한 일본 정부의 미온적 대응을 문제 삼아 국교 단절까지 검토했다는 사실을 부각시켜 보도했다.

그러나 별도의 논평은 하지 않고 이번에 드러난 사실관계를 중심으로 전했다.

도쿄신문은 “한국 정부는 이 사건에 북한과 조총련이 관여한 것으로 단정했지만 당시 일본의 수사 당국은 입증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며 사건을 둘러싼 몇 가지 의혹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정부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이 문제가 일본 정부의 책임론으로 번지는 것을 경계했다.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관방장관은 당시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가 조총련에 적절한 조치를 취했다면 암살사건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비판한 데 대해 “그 문제는 전혀 모른다”며 “어떻게 된 건지 내용을 포함해 정확히 파악해 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외교문서가 공개된 ‘재일본 한국인 서승(徐勝·59)·서준식(徐俊拭) 형제 간첩사건’의 당사자인 서승 일본 리쓰메이칸대 법학부 교수는 “한국이 민주화되고 세상이 바뀌었음을 실감한다”면서 “한국 정부의 문서공개를 계기로 일본 정부도 당시 외교문서는 물론 일제시대의 기록을 적극 공개해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동아시아 시대를 여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당시 미국 역할은▼

20일 공개된 문세광 사건 관련 문서에 따르면 정부는 수사과정에서 일본 측이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자 미국이 나서서 일본 정부를 움직여 줄 것을 당부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 1974년 9월 4일 함병춘 주미대사가 미 국무부 필립 하비브 차관보를 비밀리에 만난 데 이어(9월 4일 외무부 긴급문서) 5일 김동조 외무부 장관은 에릭슨 미국대사 대리와의 면담에서 “미국은 제임스 하지슨 주일대사를 통해 미국 방문을 앞두고 있는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나 기무라 도시오(木村後夫) 외상에게 영향력을 행사해 달라”고 주문했다(9월 5일 면담요록).

이에 에릭슨 대사 대리는 “그동안 한일 관계를 더욱 악화시키는 돌발적인 움직임은 없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일본의 방침에 변화가 없자 김 장관은 9월 9일 에릭슨 대사 대리를 만나 “다나카 총리가 미국을 방문하기 전 친서를 보내지 않는다면 주일 한국대사 소환, 장관 사표 제출, 주일공관 철수를 단행하겠다고 일본대사에게 밝혔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일간 감정이 악화 일로로 치닫자 하비브 차관보는 9월 10일 주미공사에게 전화를 걸어 “친서 내용에 대해 한국이 너무 강경한 태도를 취하지 말아 달라”고 진화에 나선 사실도 드러났다.

한일 양국 관계는 붕괴 직전 미국이 중재에 나서면서 돌파구가 마련됐다. 하비브 차관보는 13일 박근 주미공사, 14일 윤하정 주일공사를 차례로 만나 “한국의 조총련 규제 요구는 비합리적”이라며 일본 측 안을 받아들일 것을 요구했다(9월 13, 14일 외무부 보고문서). 그로부터 이틀 뒤 김 장관과 우시로쿠 도라오(後官虎郎) 주한 일본대사는 다나카 총리 친서에 대한 원칙적 합의를 이뤄냈다(9월 17일 외무부 보고문서).

최영해 기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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