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弱달러, 팔수도… 안팔수도…”

  • 입력 2004년 12월 13일 17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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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화 약세가 계속되자 외환사정이 넉넉한 ‘달러 부자나라’들이 딜레마에 빠졌다.

달러표시 자산을 팔아치우자니 달러 폭락을 부추겨 손실이 더 커질까 걱정이고, 그대로 보유하자니 막대한 평가손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달러화를 팔고 유로화 등 강세 통화를 사들이는 ‘달러 이탈’ 현상이 본격화하면서 일본 중국 한국 등 외환보유액이 많은 나라들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세계 제1의 대미(對美) 채권국인 일본은 달러 약세로 수출경쟁력 약화 외에 보유자산의 평가손 증가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아사히신문이 13일 전했다.

일본은 미국 국채발행 잔액의 약 10%를 보유중이어서 달러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평가손이 불어난다. 여기에 11월말 현재 8400억8700만 달러에 이르는 외환보유고 중 상당 부분이 달러표시 자산이어서 달러화가 하락할 때마다 앉아서 손해를 보고 있다.

다니가키 사다카즈(谷垣禎一) 일본 재무상은 “일본처럼 거액을 미국 국채로 갖고 있는 나라는 세계 환율 질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행동하기가 조심스럽다”면서도 “하지만 리스크를 너무 많이 질 수도 없어 고민”이라고 털어놓았다.

일본 정부는 달러표시 자산을 매각할 경우 달러가치 폭락(엔화가치 급등)→일본기업 수익 악화→주가 하락→경기침체로 이어질 것을 걱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일본 당국자들은 세계적인 달러 투매를 유발할 수도 있는 ‘달러 매각 방침’ 표현에 각별한 신경을 쓰고 있다. 실제로 1997년 하시모토 류타로(橋本龍太郞) 당시 총리가 “미 국채를 팔라는 유혹을 받은 적이 있다”고 말하자 미국 주가가 폭락해 세계경제가 출렁댔다.

국제결제은행(BIS)은 최근 보고서에서 “일부 아시아 국가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들이 달러화 대신 유로화의 보유 비중을 늘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5400억 달러의 외환보유고로 일본에 이어 2위인 중국도 달러 비중을 줄이면서 유로화를 사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정부는 유로화 비중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 일각에서는 중국 러시아의 행보에 대해 “자기들만 손해를 덜 보려고 달러표시 자산을 처분한다”며 불만스러워 하고 있다.

도쿄=박원재 특파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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